사도 바오로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로마 11,33)
한평생을 하느님을 전하는 데에만 헌신했던 바오로 성인조차도 하느님의 뜻을 알아내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들에게야 그것은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베드로 성인조차 인간적인 마음으로만 생각하다가 예수님께 사탄이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뜻과 계획을 먼저 헤아리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앞길을 막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그리스어 원문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만일 누가 내 뒤로 오기를 원한다면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방금 전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여기서도 당신의 뒤로 가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앞길을 가로막았던 베드로에게 당신의 뒤로 가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당신의 뒤로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앞길을 막지 않고 온전히 예수님의 뒤로 오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자신을 버리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거부했을까요?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분의 행동과 기적들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야말로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하느님께서 온 인류를 위해 보내주신 메시아시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 분이 수난과 죽음을 겪어야 한다는 건 베드로에게 도무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반박하면서 예수님의 뒤에 서지 않고 앞길을 막은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뒤로 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확신조차 버려야만 했습니다. 그 확신이 비록 하느님에 관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뜻이 그것과 다르다면 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십자가는 누구에게나 무겁고 짊어지기 싫은 것입니다. 십자가는 때로는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일일 수도 있으며, 본인 자신의 부족한 모습들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하느님께 왜 나에게 이렇게 힘든 십자가를 주시느냐고 불평하며 힘겨워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나의 십자가는 분명 나와 관련이 있고 대부분은 나를 위한 십자가이지만, 그분이 짊어지신 십자가는 그분과 아무 관련이 없고 그분을 위한 십자가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짊어지신 십자가는 오로지 우리를 위한 십자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그런 당신의 뒤로 오기 위해서는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은 예수님의 뒤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의 뜻과 계획은 생각하지 않고 나의 인간적인 마음으로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모습으로서 나를 위한 예수님의 앞길을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예수님께 걸림돌인지 아니면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에 서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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