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이들은 종교 지도자들로서 겉으로 보기에는 하느님의 뜻에 “예!” 하고 먼저 대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례자 요한이 와서 회개하라고 외쳤을 때에도 요한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을 전해주셨지만 그 예수님의 말씀마저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 삼으며 예수님을 죽이려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라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께 구원받는 길은 더 이상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사람들에게 회개를 설교하고 세례를 베푼 것도 결국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오셨을 때 사람들이 그분을 구세주로 알아보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미리 시켰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요한의 설교를 듣고도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그들의 가장 큰 잘못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들은 구원의 길에서 멀어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라는 말은 그리스어 ‘metanoia’를 번역한 말인데 이것은 본래 ‘가던 길을 바꾸다, 가던 길에서 돌아서다’ 라는 뜻입니다. 그동안 잘못되어왔던 삶의 길과 나의 생각을 바꾸어서 하느님의 뜻대로 돌아서는 것이 바로 회개인데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들만이 옳다고 고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는 엄청난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알지도 못했습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 내 생각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 고정관념, 선입견, 닫혀있는 마음이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낳습니다.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우물 속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할 뿐 결코 우물 너머의 세상을 알지 못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나는 오늘 예수님의 비유 말씀에 나오는 맏아들입니까? 아니면 둘째 아들입니까? 나는 가톨릭교회의 신앙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그동안의 나의 생각과 나의 삶을 바꾸려고 했습니까? 아니면 신앙은 신앙대로 놔두고 내 생각과 내가 걸어온 삶의 길은 그대로 고집하고 있습니까? 나는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이 열려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말을 받아들이려고 합니까?
어쩌면 나도 스스로를 옳다고, 나는 잘 산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을 잘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그 시대의 세리와 창녀처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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