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해마다 부활 제4주일을 성소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교회는 지금까지 이 성소를 크게 사제 성소와 수도 성소와 결혼 성소의 세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해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제로 살으라는 부르심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수도자로 살으라는 부르심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살으라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은 이 큰 세 가지 부르심에만 국한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세 가지 부르심의 큰 테두리 안에서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가 부르심의 다가 아니라,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한 뒤 그 길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부르심의 본질이며, 우리가 받은 ‘소명’도 거기서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사제가 되었다고 해서, 수도자가 되었다고 해서, 결혼을 했다고 해서 부르심에 완전히 응답한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어떤 삶을 사느냐가 소명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시고, 우리들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려고 우리를 준비시키시고, 우리에게 당신이 원하시는 어떤 ‘소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식별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을 식별할 수 있는 분명한 길 한 가지는 내가 지금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사제도 수도자도 부부도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진정 나에게 원하시는 것, 나를 통해 하고자 하시는 바를 알지 못한 채 그저 사제로, 수도자로, 부부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나의 길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항상 나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소명을 다하기 위해 정말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뿐인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알고 계십니다.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숨길 수 있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기에, 나에게 가장 알맞은 소명을 주십니다.

그 소명을 찾아내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있는데 그냥 알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소는 다른 누군가가 식별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가 사제나 수도자가 되라고 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저 사람과 결혼하라 한다고 해서 바로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며, 그 안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찾는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오늘 성소 주일을 맞아, 하느님은 진정 나를 어떤 삶으로 부르고 계시는지, 나에게 어떤 ‘소명’을 주고자 하시는지, 내가 선택해야 할 길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지금 나의 삶의 자리에서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나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얼마만큼 응답하며 살고 있는지, 나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