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안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믿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아는 만큼 믿습니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각자 하느님을 아는 만큼 믿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여러분의 신앙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하느님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먼저 당신 자신을 알려주셨습니다. 이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계시’라는 말은 라틴어 revelatio를 번역한 말인데 이 말은 ‘닫혀진 것을 열다’,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 보여주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즉 계시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감추어져 있던 당신 자신과 그 신비를 우리 인간에게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바로 신앙입니다.
이 계시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시는 성경 말씀 안에서 드러납니다. 결국 우리가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며,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깊지 않은 이유는 하느님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이것은 결국 우리가 성경 말씀을 잘 모른다는 것과도 같습니다.
현대인들은 매우 바쁩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나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거의 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을 알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취미 생활에는 나의 시간과 노력과 재물을 아낌없이 쏟아붓지만 하느님을 알려고 하는 데에는 작은 노력조차 기울일 시간이 없습니다.
다이어트나 건강, 취미와 관련된 책들 또 내가 관심이 많고 읽고 싶어 하는 책들을 읽을 시간은 있지만 성경을 펼쳐서 읽을 시간은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성당에 와서 참여하는 주일 미사 시간에도 분심, 잡념과 세상일에 마음을 쏟다보면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아마 예수님은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가 아니라 “너희는 나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느냐?”고 물어보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믿음은 하루아침에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곧바로 생겨나는 것도 아닙니다. 매 주일 미사를 열심히 온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하느님을 아는 만큼 생겨나고 내가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분의 섭리를 깨닫는 만큼 깊어집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도 잘 믿지 못하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렵고도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 하더라도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또 내가 추구하는 뭔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온 몸을 던져서라도 그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믿음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아직도 나는 하느님을 잘 모른다고 생각된다면 알기 위해서, 믿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갓난아기 때는 엄마가 음식을 직접 먹여 주지만 크면 스스로 밥을 먹어야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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