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느님, 뭔가를 보여 주셔야지요
작성자:
김형기 스테파노         9/27/2020
내용:

하느님, 뭔가를 보여 주셔야지요

며칠 전 CNN에서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의 파비안 아리아스 신부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도했다. 화면에서는 이 성당의 주임 신부인 아리아스 신부가 서른세 번째 사망자로 명단에 오른 라울 루스 로페스의 장례 미사를 집전하는 걸 보여준다. 39세인 식당 배달원인 로페스는 지난달 뉴욕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는 이 성당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망한 여러 신자 중 한 명이다. 아리아스 신부의 책상 위에는 장례 미사를 대기하고 있는 사망자 명단이 놓여있고, 그 위에는 이 장례 미사 후에 쓸 마스크가 있다. 그 명단에는 10여 명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조만간 더 많은 신자의 이름이 추가될까 봐 걱정이다. 성당 지도자들의 말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망한 신자들이 벌써 44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 사망자 수는 이민 사회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아리아스 신부의 말에 따르면 이 성당 신자의 90% 가까이는 남미 출신이며 그중 많은 이들이 불법 이민자라고 한다. 그는 “바이러스는 가장 취약한 곳에 자리 잡아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감염시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차별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사회 구성원인 그들을 차별합니다.”라고 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가장 불안정하고 취약한 이 양 떼를 돌보는 아리아스 신부의 심정이 어떨까? 그들을 위해 주님께 끊임없이 기도해도 이들이 계속 죽어 나가는 걸 지켜보며 아리아스 신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는 아닐 것 같다.

나는 이 기사를 보며 문득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쳐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뉴욕에서 아테네로 항해 중이던 포세이돈 호는 섣달그믐 한밤중에 거대한 해저 지진을 만나 전복된다. 파티를 하고 있던 3백여 명의 승객들은 당황한 채 우왕좌왕한다. 이때 스콧 목사(Reverend Frank Scott: 진 핵크만 분)가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면서 선체 상단으로 올라갈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승객은 그를 불신한 채 한곳에 남아있겠다고 버틴다.


스콧 목사 일행이 올라가고 난 뒤 거대한 수마가 덮쳐 나머지 승객들이 몰살당한다. 한편 목사 일행이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어렵사리 출구에 다다랐을 때는 증기 밸브가 열려 주변이 온통 열기로 가득한 상황이었다. 스콧 목사가 갑자기 몸을 던져 밸브를 잠그고 익사한 뒤 나머지 사람들은 출구를 통해 빠져나가 구조된다. 단지 6명의 승객만이 생존한 것이다. 스콧 목사는 밸브를 잠그고 익사하기까지의 아래와 같이 절규한다.

“주님, 또 뭘 바라십니까? 저희는 당신 도움 없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기랄, 당신께 우릴 위해 뭘 해달라고 청하지 않았습니다. 제발 방해나 하지 마십시오. 제발 우릴 그대로 내버려 두십시오.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원하십니까? 얼마나 더 많은 피를 요구하십니까?” (스콧 목사는 통로를 건너뛰어서 고열 밸브를 잠그는 손잡이를 움켜쥐고 매달린 채, 그걸 돌리기 시작한다.)

얼마나 더 많은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이미 바친 생명 말고 또 다른 생명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저를 데려가십시오.” (증기가 멈춘다. 스콧 목사는 밸브에 매달린 채 생존자들에게 얼굴을 돌린다.)

우리는 실제로 하느님의 침묵 앞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때가 많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아무리 소리쳐도 대답이 없는 하느님께 우리는 푸념하듯이 물음을 던진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계신다면, 왜 내게 이런 일들을 허락하시는가?", "전능하신 하느님이 계신다면, 왜 내게 아무런 도움을 주시지 않는단 말인가?" 또 사회적으로 엄청난 불의와 부조리가 자행되는 것을 묵과하시는 하느님 처신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묻는다. "하느님 전능하신 분 맞아?" "전능하신 하느님이 왜 저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가?" (차동엽 신부의 ‘전능하신 하느님 맞아’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교회에서는 코로나 19 극복을 위한 기도를 열심히 바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하느님은 침묵하신다.’라고 느낀다. 그리고 불경스럽게도 “하느님 이럴 때 가만히 계시지 말고 뭔가를 보여 주셔야지요.”라고 보채며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바친 기도를 무시하신다고 투정을 부린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다. 기원전 600년 경에 쓰인 하바쿡서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보면 나처럼 신앙심이 변변치 못한 사람이 오래전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주님, 당신께서 듣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까? 당신께서 구해 주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폭력이다!’ 하고 소리쳐야 합니까?” (하바 1, 2)

사실은 하느님께서 침묵하고 계시는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고통을 받고 계신다고 교회에서는 가르치고 있으나, 나 같은 신자는 그걸 깨달아야만 진심으로 하느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될 텐데. 아무래도 나는 아직 멀었다. 멀어도 한참 멀었다.

(2020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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