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작성자:
김형기 스테파노         12/17/2020
내용: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입원한지 반년이 지난 2005년 연말,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저녁이었다. 병상에 누워있는데 병원 복도 저 끝에서 들릴 듯 말 듯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Silent night, holy night! (고요한 밤, 거룩한 밤!)

All is calm, all is bright. (온세상이 고요하고 빛나네.)

귀 기울여 들어 보니 한두 사람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다. 아마 부근 교회의 성가대가 방문했나 보았다. 노랫소리는 차츰차츰 가까이 다가왔는데, 그들은 병실마다 들러서 노래하는 것 같았다.

Round yon Virgin, Mother and Child, (저기에 순결한 엄마와 아기가 있네.)

Holy infant so tender and mild, (연약하고 거룩한 아기로다.)

해마다 듣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었지만, 다리 하나가 절단되어 하루의 대부분을 병상에서 보내던 환자 신세로 듣던 그 노래는 평생 처음 들어 보는 노래처럼 새롭게 다가왔다. 입으로 음식을 삼키지 못해 배에 연결된 튜브로 유동식을 공급받아 연명하던 때라 노래조차 ‘고요한 밥, 거룩한 밥’으로 들려서 서러웠다. 참 배고팠다. 거창한 음식이 아니라 옆 병상의 환자가 먹고 마시던 계란부침이나 오렌지 주스라도 배불리 먹고 싶던 때였다.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았지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람.” 그렇게 생각하는데 노랫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어느덧 성가대가 내 방에 왔다. 몇 명은 병실에 들어오고, 대부분은 복도에 서서 노래했는데 열 명이 훨씬 넘는 것 같았다. 그들은 ‘Silent night, holy night!’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고 떠났다.

Sleep in heavenly peace, (천상의 평화 속에 잠들어라.)

Sleep in heavenly peace. (천상의 평화 속에 잠들어라.)

노래를 들으며 서럽던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성대가 망가져서 말을 할 수 없던 때라서 “Thank you.”라는 말도 못 하고 겨우 손 흔드는 거로 감사의 뜻을 표했지만, 일부러 병실을 찾아준 알지도 못했던 미국인 성가대가 정말 고마웠다. 나는 ‘Celtic Woman’이 부르는 크리스마스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들의 노래도 오래 전 병실에서 들은 무명 성가대의 ‘Silent night, holy night!’만큼의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성가대가 방문하고 며칠 후 성대 수술을 마치고 말하고 먹고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12월 31일에 퇴원하고 정말 오랜만에 집으로 와서 휠체어로 움직이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루하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의족을 끼고 쌍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게 되어서 그 다음 해 크리스마스에는 걸어서 미사에 참례할 수 있게 되었다.

해마다 성탄 무렵에 ‘Silent night, holy night!’을 들으면 오래 전 병실에서 그 노래를 듣던 때가 생각난다. 서러웠지만, 하느님의 은혜를 느꼈던 그때가.

노래할 수 있다면 나도 그들처럼 병원을 방문해서 외롭고 서러운 환자들 앞에서 ‘Silent night, holy night!’을 불러주면 좋겠지만, 태생 음치인 데다가 성대 복원 수술 후 목소리를 되찾기는 했지만, 때로는 말하는 것조차 힘겨운 나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2017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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