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술이란 좋은 것이여
작성자:
김형기 스테파노         12/31/2020
내용:

술이란 좋은 것이여

이현주 목사의 수필집에 나오는 술에 얽힌 사연이 재미있다. 그분이 오래전에 충청도 어느 시골 예배당에서 목회할 때 갑자기 과일 선물이 많이 들어와 먹고도 많이 남아서 별생각 없이 과일주를 담아 선반에 몇 병 올려둔 걸 어느 장로가 보고는 목사님이 어찌 이럴 수 있느냐고 문제 삼아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예배당에서 해고되었다는 얘기다.

나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어느 개신교 신자 한 분도 평소에는 술을 잘 마시지 않는데, 우리 집에서 식사라도 하면 주인장인 나의 얼굴을 봐서 어쩔 수 없이 마셔 준다는 품새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기 전에는 두주불사였던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 집 말고 다른 곳에서는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분이 예배당에서 오랫동안 봉사도 열심히 하고 재정적으로 기여도 많이 해서 연륜이 쌓여가며 장로 자리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선출 과정에서 그만 그 놈의 술 때문에 탈락했다고 한다. 평소에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고 지낸 분이 어느 날 매우 속상한 일이 있어서 동네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해서 흐트러진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걸 하필이면 같은 예배당에 나가는 장로가 목격하고 장로 선출과정에서 그분의 품행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부적격자라는 의견을 표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백인 목사가 교인들과 함께 맥주를 호쾌하게 마시는 장면도 보았고, 개신교 신자들이 파티에서 축배를 드는 장면도 보았는데, 한국인 개신교 신자들은 금주를 철저히 지키는 것 같다. 하기야 미국인 개신교도 중에서도 근본주의자들은 금주를 엄격히 지킨다고 하니, 교파에 따라서 술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 같기는 하다.

오래 전에 뉴욕의 어느 친구 집에서 고등학교 동창생이 열 명 정도 모인 적이 있었는데, 졸업 후 30여 년만에 처음 만나는 자리라 술잔이 오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기대했다. 역사 교사 쌕쌕이, 독일어 교사 미친 개, 화학 교사 모세 다얀…등 선생님들 얘기와 친구들 얘기로 밤늦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 같았는데 결과적으로 조용하고 거룩한 시간이 되어서 서운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입이 안 풀리는 나는 이제나저제나 하고 술 나오기만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애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인장은 물과 청량음료만 몇 병 내어놓고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나만 빼고 모두 개신교도라서 바로 집 부근에 술 가게가 있으련만 누구도 술 찾는 이가 없었다. 맑은 정신에 성경 얘기, 교회 얘기 등 신앙생활 얘기만 듣자니 그런 고역이 없었다. 학창 시절 악동들이 모두 나보다 더 얌전 빼는 걸 보니 신앙의 힘이 세기는 센 것 같았다. 그 이후에도 비슷한 모임이 몇 차례 더 있었지만, 이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참가를 사양한다. 술 없는 심심한 모임에 왜 나간담.

나와 같은 성당에 나가는 신자 중에 자녀들이 한인 개신교 신자와 결혼한 분들은 사돈이 술을 못 하니 사돈끼리 만나도 재미가 없더라고 가끔 푸념한다. 우리 두 딸은 모두 한국 남자와 결혼했는데, 큰 사돈은 가톨릭 신자고 작은 사돈은 개신교 신자다. 큰 사돈하고 만나면 술 때문에 서운할 일은 없었지만, 작은 사돈과 만나기 시작해서 얼마 동안은 좀 신경이 쓰였다. 괜히 내가 억지로 술을 권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알아서 마시거나 말거나 그냥 두었더니 대체로 조금만 마시는 것 같아서 그럴 때마다 사돈이 가톨릭 신자가 아닌 게 좀 아쉬웠다.

얼마 전, 올해가 가기 전에 얼굴이나 보자고 작은 사돈 내외와 저녁을 함께 했다. 내가 마실 술로 소주 두 병을 준비했는데, 사돈도 나 마시라고 소주 두 병을 들고 와서 넉넉한 소주병을 보니 시작부터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나에게는 외손자이고 그에게는 친손자인 우리 손자 얘기가 나오니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나는 평소에 마시던 대로 부지런히 마셨지만, 술 앞에서는 얌전 빼던 사돈이 술발이 올라 버렸다. 결국, 둘이서 네 병을 마셨는데, 정확하게 내가 두 병, 그가 두 병을 마셨다. 술김에 우리 손자는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데에 의견이 일치해서 기분이 고조되어 둘 다 무리한 셈이다. 트럼프 같은 인물도 대통령이 되었는데 우리 손자 정도면 대통령 될 자질이 충분하다고 말할 때마다 “하모예. Why not?” 하며 장단을 맞춰 주며 술잔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문제는 우리가 50년 정도는 더 살아야 그런 영광을 볼 수 있을 텐데 120살까지는 살 수 없을 것 같으니 그 점이 걱정이로다.

그런데 그날 그 식당에서 사돈이 술 마시는 걸 본 교인은 없겠지. 내가 우리 사돈 출세길을 막은 건 아닌가 몰라. 손자가 대통령 되기 전에 우리 사돈이 우선 장로가 되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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