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봄이 오고 있다
작성자:
김형기 스테파노         3/9/2021
내용:

봄이 오고 있다

 

지난겨울 날씨는 유난히 매서웠다. 갠 하늘을 본 날이 많지 않았고, 눈 내리는 날이 많았다. 두어 차례의 폭설과 계속되는 찌푸린 하늘은 세상을 어둡게 만들었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친 마음을 더 힘들게 했다. 매서운 바람까지 불며 오랫동안 이어진 영하의 날씨로 땅은 돌덩이처럼 단단해졌다. 많은 이들의 마음이 무거웠으나 애써 간직해 온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다.

3월이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났어도 날씨는 아직 쌀쌀해서 겨울이 봄에게 쉽사리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것 같아도 따스한 햇살은 알게 모르게 겨우내 쌓인 눈을 녹이고 있었다. 드러난 누런 땅에는 눈밑에 숨어 있던 연두색 이끼와 낮게 깔린 풀잎이 눈에 띈다. 그걸 보니 농가월령가 (음력) 이월령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반갑다 봄바람에 의구히 문을 여니 말랐던 풀뿌리는 속잎이 맹동한다”

산책길에서 만난 청설모는 내가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고 계속 땅을 파헤치며 숨겨둔 도토리를 찾고 있었다. 머리 위로는 꺼욱 꺼욱 소리를 내며 거위 여남은 마리가 날고 있었는데 아마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호수에서 남쪽에 있는 들판으로 먹이를 구하러 가나 보았다. 집 앞 계단에서 멧비둘기 두 마리가 종종거리며 걷는 게 보였다. 이따금 하늘 높이 독수리 두어 마리가 나는 게 보이지만, 이놈들은 추운 겨울에도 높은 데서 빙빙 도는 게 보였기에 새삼스럽지는 않다.    

머지않아 잔설이 모두 녹고, 개똥지빠귀(Robin)도 동네 어디에서나 보일 것이다.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는 길고양이도 동네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다람쥐를 노릴 테고, 줄무늬 다람쥐도 나타나 꼬리를 곧추세우고 바쁘게 뛰어다닐 것이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까지 가끔 보이던 사슴 가족도 나타나 유유히 거닐 것이다.

우리 집 주위에는 두 종류의 다람쥐가 산다. 청설모라 불리는 회색빛 다람쥐 종류는 꼬리가 탐스러운데 나무에서 땅으로, 땅에서 나무로 늘 분주히 오르내린다. 땅 위를 걸을 때는 몇 발자국 가다가 서고, 또 몇 발자국 가다가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 습관이 있다. 겨울잠을 자지 않지만, 추운 겨울에는 나무 구멍이나 나뭇가지에 낙엽을 긁어모아 새 둥지처럼 만든 곳에서 추위를 피한다. 가끔 나무에서 내려와 쌓인 눈을 파 뒤지며 먹이를 찾곤 한다.

줄무늬 다람쥐는 몸집이 꼭 생쥐만 한데, 나무를 오르내리는 건 별로 보지 못했다. 늘 땅 위에서 뽀로로 뛰어가거나 땅을 파는 걸 볼 수 있다. 그놈은 땅에 뚫은 굴에서 혼자 겨울잠을 자는데, 굴속에는 보온을 위해 낙엽을 모아둔 침실과 가끔 깨어서 먹을 식량을 보관하는 창고 그리고 가끔 깨어서 배설하기 위한 화장실 등 세 개의 방이 있다고 하니 제법 호화 저택에서 겨울을 보내는 셈이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집 앞 나무 근처에 두 개나 뚫린 줄무늬 다람쥐 굴을 살피는 게 일과가 되어버렸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자그마한 다람쥐가 들락거리며 겨울 양식을 저장하던 굴 입구는 아직도 낙엽 몇 장으로 덮여 있다. 다람쥐가 동면에서 깨어나 대문으로 대용하는 낙엽을 열고 나오면 그게 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가 될 것이다.

봄이 오고 있다. 우리가 힘든 시기를 견디며 기다리던 게 올 것이다. 봄이 멀지 않았다.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 아직은 귀를 기울여야 가끔 새소리가 들리지만, 머지않아 시끄러운 새소리에 새벽잠을 설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살갗에 닿는 햇볕이 따사롭지는 않아도 곧 따뜻해질 것이다. 누런 땅과 벌거벗은 나무에서도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보인다. 곧 땅을 뚫고, 나뭇가지를 뚫고 녹색 생명체가 솟구쳐 나올 것이다.

봄이 오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고 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 (J. 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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