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 때문에-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작성자:
sung hwan james         7/2/2017
내용:
2017년 7월 2일 주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다 <때문에>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성인은 사람이 한 짓을 하느님을 위한 것으로 바꾸는 사람들.
   
오늘 복음은 김 대건 사제 축일 때마다 읽고,
또 다른 때에도 읽었기에 수없이 많이 읽은 복음이지만
오늘은 읽는 동안 다른 때 크게 생각지 못했던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나 때문에>라는 부분이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 하면
사람들이 한 짓도 하느님께서 하신 일로 바꾸고,
사람들에게 당한 것도 하느님을 위한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렇지요. 성인들은 이렇게 하신 분들이고
특히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김 대건 사제는 능히 이리 하신 분입니다.
 
김 대건 사제 일가에 일어났던 일은
오늘 복음에서 주님이 미리 말씀하신 내용 그대로입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김 대건 사제의 아버지 김 제준이 순교하게 된 것은
바로 사위, 그러니까 김 대건 사제의 자형의 밀고 때문입니다.
 
분명 아버지 김 제준의 순교는 자형의 밀고에 의한,
곧 사람에 의한 죽음이지만 김 대건 사제의 편지에는
자형에 대한 원망이 없을뿐더러 이 일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습니다.
 
자신의 가족사가 부끄럽거나 서글퍼서 그랬을까요?
그런 것이었다면 성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복음적으로 이해하셔서 그러셨을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초월적으로 모든 것을 보셨을 겁니다.
그 일이 자식이 부모를 팔아먹은 참으로 서글프고 애석한 일일 수도 있고
장인을 팔아먹은 게 아니라 자신의 유교적 신념에 따른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어쨌건 성인은 아버지가 하느님을 위해 순교한 거라고 보신 거고,
그래서 성인에게는 결코 불행한 사건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사건이라면
자형의 밀고를 잘한 것이라고 칭찬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그런 짓을 했냐고 분노하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는 있지요.
 
<하느님 때문(Propter Dei)>이라면
원인도 하느님 때문이고,
목적도 하느님 때문이라는 얘깁니다.
 
실상 하느님 때문이 아니라면
자형이 아버지를 밀고하는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버지 김 제준도 순교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을 달리 얘기하면 <하느님 사랑 때문(Propter Amorem Dei)입니다.
하느님 사랑 때문에 순교를 선택한 것이고,
하느님 사랑 때문에 그 모진 고문과 순교를 견딜 수 있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견딤과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죄인이나 소인은 죄나 잘못된 것을 다 <너 때문>이라고 하지만
성인이나 대인은 모든 것이 다 <하느님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인이나 대인에게는
환난과 순교의 이유도 하느님 사랑이고,
환난과 순교의 목적도 하느님 사랑임을
오늘 김 대건 성인과 모든 성인의 순교를 통해 다시 한 번 묵상합니다.
 
김 대건 신부님이 쓴 편지를 보면 
김 대건 신부님과 취조를 하던 관장과 나눈 대화가 소개됩니다. 
김 대건 신부님이 “관장께서 내가 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형벌을 당하게 해주시니 관장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천주님이 이런 은공을 갚고자
당신을 더 높은 관직에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하고 말하니
관장과 모든 사람이 비웃고 오히려 칼을 내리는데
김 대건 신부님이 그 칼을 반겨 맞이하니 또 크게 웃었다고 합니다.
 
저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나이 현상이라고 생각되는데
나이를 먹으면 마음이 아주 약해지고 소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자그마한 불편도 그래서 두렵고
사이좋게 잘 지낸다는 핑계로 누구와 맞서는 것도 피합니다.
그래서 이해심과 포용력도 커지고 
온순하고 인자한 사랑은 더 커지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큰 고통과 갈등을 감수해야하는 사랑은 피하게 됩니다.
사랑과 고통 중에서 고통을 더 크게 보고
정의로운 평화보다는 갈등을 더 크게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고통 앞에서 벌벌 떠는 작고 초라한 저의 사랑을 보며
반면 김 대건 신부님의 그 늠름하고도 뜨거운 사랑을 보게 됩니다.
 
늠름한 사랑이란 고통 때문에 결코 졸아들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 정도의 고통쯤이야 “까짓것”!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옴짝달싹할 수 없게 온 몸을 결박하는 칼을 받게 되었을 때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반기고,
희광이가 목을 치려 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목을 치기 쉽냐고 묻는 
김 대건 신부님의 의연함과 기상은
고통의 두려움을 넉넉히 넘어서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더욱 멋진 사랑은 뜨거운 사랑입니다.
아니 타오르는 사랑입니다.
고통을 땔감 삼아 타오르는 사랑입니다.
고통이 그의 사랑을 더욱 불타오르게 합니다.
시원찮고 초라한 사랑은 고통으로 인해 사랑의 불이 꺼지지만
이미 활활 타오르는 사랑에겐 고통이 오히려 불쏘시개일 뿐입니다.
 
어렸을 때 이미 경험했기에 저도 이런 사랑을 알기는 합니다.
저는 누나들과 십리 정도 떨어진 성당에로 매일 미사를 다녔습니다.
변변한 옷도 걸치지 못하고 추위에 떨며 성당에 갈 때
어려서 뭐가 뭔지 모르지만 가슴에서 타오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장마철 물이 불어 가슴까지 물에 빠지며 굴다리를 건너
물에 빠진 생쥐마냥 미사에 참석할 때 
이보다 더 큰 어려움과 고통이 있어도 사랑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지난 달 저는 중국을 방문했고
김 대건 신부님이 잠시 머물며 공부하셨던 소팔가자에 갔습니다.
거기서 그 광활한 만주 벌판을 발로 누비고 다니신 
김 대건 신부님의 고초와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 대건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성지순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 순례에는 차로 이동하는 성지 순례 말고
반드시 발로 걷는 성지 순례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다운로드 File:
      

글쓰기

2774
세속화 sung hwan james
11/21/2017
9
2773
1.사마리아 여자는 최초의 선교사 2.요한 공동체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질문 sung hwan james
11/19/2017
11
2772
미사에 참석까지만... sung hwan james
11/19/2017
14
2771
불이 켜지지 않은 등 sung hwan james
11/11/2017
22
2770
그분께 칭찬 받을 일 sung hwan james
11/10/2017
24
2769
말씀에 대한 성모님의 결단과 실천 sung hwan james
11/10/2017
19
2768
은총의 흐름을 가로막는 나 sung hwan james
11/10/2017
17
2767
성전 허물기와 다시 세우기 sung hwan james
11/9/2017
20
2766
그분을 향한 심장 박동질 sung hwan james
10/29/2017
32
2765
저의 힘이신 주님...저의 방패 sung hwan james
10/29/2017
28
2764
진리 또한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sung hwan james
10/26/2017
35
2763
돌보아야 할 이에게 어떤 양식을 내주는지 sung hwan james
10/26/2017
30
2762
그리스도인들이 살아 남아야 할 생존의 자리 sung hwan james
10/24/2017
44
2761
부자가 그분의 나라에서 궁색해지는 이유? sung hwan james
10/24/2017
39
2760
내가 빼앗긴 줄도 모르는 것이 그분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sung hwan james
10/24/2017
54

First Page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Next 10 Page Last page
2016년 사목지침

“행복을 찾고 지키십시오!"
(곁에있는 소중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에페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