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재의 수요일

입춘이 지났고 봄이 오는 길목에 올해도 어김없이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또 한 살 나이를 먹듯이 부활을 맞이하기 위한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삶의 여정에서도 우리는 가끔 멈추어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사순 시기는 그런 전례시기 중의 하나입니다.

사순절 기간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과 함께 머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분을 더 많이 알기 위해, 그분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리고 이웃 안에 계시는 그분을 위해 더 많이 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순절 전례는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시작됩니다. 1독서에서 예언자 요엘은 우리에게 외칩니다.  “뿔 나팔을 불어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백성을 모으고 회중을 거룩하게 하여라.”

오늘 전례가 말하는 축제는 먼저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술을 마시고 배불리 먹고 소란을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순절 동안의 풍성한 식사는 금식입니다. 만일 우리 마음이 성령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면 성령은 우리 마음속에 축제를 불러일으킵니다. 가난한 마음, 빈 마음이 있어야 하며, 하느님께로 향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단식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가 배고픔을 겪어보아야 가난한 이들을 이해할 수 있고, 지금의 나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달러로 하루를 살아가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100달러로 한 달을 살아가는 이가 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처지입니까? 그들보다 낫다면 현실에서 불평하기보다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단식과 금육이 강요된 희생이어서는 안되겠지만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썩어 없어질 육신의 욕구를 스스로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주위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얼마나 많은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제가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 1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추기경님의 선종 후 교회 안팎에서는 장기기증 희망자가 늘어났으며, 바보의 나눔 재단이 설립되었는데, 종교를 초월해 모금을 하며 기부문화를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김추기경님이 마지막 남긴 말,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와 안구기증은 한국인들에게 숭고한 종교지도자를 닮고 싶어 하는 일체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사회는 오히려 그를 향해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김 추기경님의 삶과 정신은 물질이 정말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나? 라는 화두를 던졌으며, 영원히 우리와 동행할 그 말.... ‘서로 사랑하세요’는 우리가 받은 숙제이기도 한 말입니다. 김 추기경님은 스스로 바보라고 고백하신 것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요. 서로 잘났다고 말하고 있는 이 시대에 스스로 낮추는 ‘겸손한 마음’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보셨으며 나눔을 실천하는 데에 바보가 되자는 깊은 뜻이 숨어있지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심하게 질타당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강조하는 율법에는 사랑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딜 가도 율법이란 잣대를 들고 다니며 혹시라도 누군가가 율법을 어기면 여지없이 율법서를 들이댔으며 싸늘한 눈초리와 냉랭한 얼굴, 호시탐탐 이웃의 실수를 노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랑이 상실된 법이요 인간미가 상실된 규칙입니다. 심판은 내가 한다. 너희들은 형제들이니 서로 자비롭게 대하라는 주님 말씀이 그립습니다. 내 형제가 울고 있다면 그 형제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따뜻한 형제애가 그립습니다. 이론보다 사랑을, 토론보다 서로 얼싸안고 부둥켜안으며, 이 세상에서 너는 소중한 존재야! 너는 우리 공동체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야! 라고 말해줄 수 있는 친구가 그립습니다.

오늘 머리에 재를 얹으면서 “사람아,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는 사제의 말을 들었지요.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갈 존재가 ‘나’임을 기억하라는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내가 공덕을 높게 쌓는다 해도, 이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 칭찬을 받거나 부자가 된다 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시오.’ 이 말은 우리 삶의 종착점인 죽음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이기적인 생활을 버리고 상처 받은 이웃을 챙기며 하느님을 멀리 떠난 삶에서 회개하여 나를 필요로 하는 이웃을 돌보는 사랑의 실천으로 돌아서게 하는 데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