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창을 타고 넘는 바람이 서늘해 한 여름이 초 가을 같다.

어수선히 돌아가는 세상만큼이나 이제 계절도 그 색깔을 정확히 읽을 수 없다.

그렇게 초장을 적어 논 채로 몇 날이 갔는지 모른다.

잃어버린듯한 여름이 제 모습으로 이제서야 기승을 떤다.

습도를 가득 머금은 높은 온도가 바닷가 마을 칠월의 마지막을 달군다.

한낮 땡볕이 가득한 루트 나인으로 올드브릿지를 지난다.

엑산!

회색널빤지로 못질해 논 정비소문짝들과 주유기들, 밧줄이 임시로 세워둔 기둥에 연결되어 출입을 막는다..

애써 외면 하고픈 의지와는 달리 내 눈길은 차창에서 사이드 미러와 백미러를 따라간다.

점점이 되가는 모습 속에 엑산하고 탁한 목소리로 뱉던 문킴의 형상도 점점이 되어간다.

이제 달 보름 남짓 그렇게 잊혀져 간다.

사내의 반백 년 넘는 삶의 흔적들이 이렇게 소멸돼 가는데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세상은 그렇게 담담하게 발걸음을 계속한다.

망자에 대한 공과, 함께 했던 추억들, 죽기 전 과 후의 얘기들이 산 자의

입과 입으로 회자 되며 호사가들을 즐겁게(?)하던 일도 시들해진 지 오래다.

누군가 던지는 한마디가 간혹 존재를 되새기게도 하지만 그게 한달 여전처럼

가슴이 시리지도 메이지도 안는다.

불과 한 달여 남짓의 시간으로 우린 그와 모든걸 정리해간다.

그렇게 생각하니 살아있다는 존재라는 게 참으로 한심스럽고 허무하기 짝이 없다.

우린 잊어 바리며 사는데 익숙하다 보니 잃어버리는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하나를 잊어버리면 하나를 때론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데도 그렇게 잊아바리며 산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잊고 스승을 잊고 오래된 친구를 잊고 때론 피붙이 까지도 잊는다.

어디 사람뿐인가 은혜도 잊고 원한도 잊는다 돌이켜 얼굴 붉혀지는 일이라면

반추 하는 것 조차 부끄러워 떨쳐버린다.

그렇게 잊는데 익숙하다 보니 이제 떠나온 고향이나 정겹던 그곳의 정서쯤이야

내던지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렇게 사는데……

때론 묻어버린 과거가 살아 돌아와 나를 괴롭힌다.

그럼에도 나는 레테의 강을 건너 평온을 찾으려 한다.

삶의 편린들을 하나도 던져버리지 안으려는 겸손함이 내겐 없다.

그리고 그것들이 나를 이제 힘들게 한다.

잊어지는 것 만큼 잊혀지는 것도 참기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