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2000년은 대희년이고 그것을 기회로 교회는 쇄신되어야 한다는 말들을 요즘 가톨릭 언론매체들에서 자주 본다. 대희년은 구약성서 레위서 25장에 나오는 낱말이다. 매 49년 혹은 50년마다 한 번씩 모든 토지는 원주인에게 무조건 복원하고 이스라엘인 노예는 무조건 해방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경제적 자유와 신체적 자유를 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너무나 이상적이라 "이스라엘에서 단 한 번도 곧이곧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결국 말잔치로 끝난 대희년이었다.

2000년을 앞두고 신앙인과 교회의 자세를 점검하고 새롭게 다짐하는 것은 대환영이지만 "희년"이라는 어려운 개념, 그것도 한 번도 실천되지 않은 낱말을 가져온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지구촌이라 불리는 오늘의 세계이다. 또 모든 사람을 위한 복음이고 모든 사람을 위한 교회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사용하는 기본적인 언어는 구약성서를 모르고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2000년을 위한 교회쇄신이라 말하면 못 알아들을 사람이 없지 않겠나? 말잔치만이 아닌 대희년이기를 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발생한 생활운동이다. 교회는 이 운동에 가담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유럽 중세 사람들이 생각하였듯이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구원을 중재하는 권력구조가 아니다. 현대인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내세(來世)를 위한 생명보험 기구도 아니다. 교회는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어떤 구원적 실천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데에 장애로 작용하는 요인들이 있다. 사람들의 모임이기에 야심이나 소홀함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일의 중요성이 크면 클수록 위선과 거짓은 더 많이 숨어드는 법이다. 교회는 과거 어느 한 시기의 문화적 표현을 강요함으로써 타문화권에 속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듣고 실천하는 데 지장을 주기도 하였다. 교회 안의 권위는 오늘날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소위 교계제도(敎階制度)라는 것은 초기에는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봉사직무로 이해되었지만, 교회가 지리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팽창하면서 많은 계층과 신분을 만들었다. 이 제도는 교회 안에 필요없는 고통과 잡음을 발생시켰고, 많은 신자들이 교회의 질서를 정치질서에 준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오늘날 교계제도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교도권(敎導權, magisterium)이라는 낱말은 19세기부터 통용되는 것으로 크고 높은(magis-major) 것을 의미한다. 그 반면 예수가 즐겨 사용하시고 신약성서와 교회 공동체가 오래 동안 사용해 온 복음적인 낱말은 봉사(奉仕, ministerium)이다. 이 단어는 낮고 작은(minor)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유럽 중세와 같은 봉건사회도 아니고 군주사회도 아니다. 극소수의 유식한 사람들이 있고 무식하고 몽매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있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 수직적인 사회구조 안에서 황공하게 살아가는 백성으로 된 세상이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각자 충분한 정보를 지니고 수평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의 자유의사를 존중하고 창의력을 동원하여 실효성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이렇게 변화된 세상 안에서 과거 봉건사회와 군주사회에서 이상적이던 교계제도는 현재 심각한 부작용들을 낳고 있다. 반복음적이고 반그리스도적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는 항상 정화되어야 하겠기에 끊임없이 회개와 쇄신을 계속하는 것이다"고 말하였다. 회개와 쇄신으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말이다. 공의회가 끝난 지 이미 30년이 훨씬 넘었지만, 교회는 과거 사회에서 얻어 온 이 제도를 쇄신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 강화하려는 의도를 엿보게 한다.

최근 신자들의 미사 참석률이 저하하고 영세입교하는 사람들의 수도 줄면서 어떤 교구는 본당의 규모를 줄여서 소형화 혹은 소공동체화하면 이런 현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교회에는 성당 건물이라는 하드웨어(hardware)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목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라는 소프트웨어(software)가 구시대적인 것이라 현대사회에서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사목하는 신부들이 권위주의적이다, 신부들이 너무 안이하게 산다 등의 비난은 순수한 오해에서만 빚어진 말은 아닐 것이다. 봉사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군림하도록 되어 있는 현재 교회의 제도이다. 신분 위주의 사고방식이라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실효성을 외면한 채, 그 비효율성을 복음이나 하느님을 빙자한 권위주의로 극복하려 하고 있다.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우월감에 젖은 사목자들의 마음 자세는 복음을 발생시키지 못한다. 강론은 들을 것이 없다는 가톨릭 교회의 중론이다. 신부가 본당을 위해 있는지 본당이 신부를 위해 있는지 의문을 낳게 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같은 의문을 교구와 주교의 관계에 대해서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한 교구의 사목을 책임진 주교가 한 자리에 75세까지 있을 수 있다는 현행 제도는, 한 번 주교가 되면 20년 혹은 30년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인데 이것은 중세 봉건사회의 영주들이 죽기까지 영주로 있었던 것과 큰 차이가 없는 제도이다. 현대는 실효성이 중요하다. 그것이 임기(任期)제도라는 것이다. 높은 사람이 그 자리를 지켜만 주어도 성은(聖恩)이라 생각하던 세상이 아니다. 정치가들이 장기집권하는 것에 반대하여 투쟁한 한국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이 자기 자신들의 장기집권에 대해 아무런 모순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아전인수(我田引水)식의 사고방식은 노동운동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자세에서도 볼 수 있다. 일반 기업에서 파업 사태가 일어나면, 그것은 노동자의 권리라면서 근로자들을 격려 옹호하지만, 교회재단 산하 단체에서 노동운동이 격렬하게 발생했을 때, 사직 당국에 고발하여 노동조합 간부들을 구속시키고, 노동조합을 해산한 일이 있었다면, 이런 것은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교회 지도자들이 한 일이니까 하느님의 뜻이라고 알아들어야 하나?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잣대와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는 잣대가 다르면 그 진실성과 선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하는 유럽 교회가 있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인간 각자의 자유가 존중되면서 교회의 언어와 제도는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말았다.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못하는 교회가 되었다. 그런 현상을 현대인들의 잘못이라고 말하겠는가? 현대 신자들의 "물질주의, 이기주의, 편이주의, 쾌락주의, 한탕주의, 과소비주의, 선교 의지의 부족"만 탓하면 되는 것인가?

1.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예수가 교회의 설립자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무 문제없이 받아들여지는 말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예수라는 한 스승을 중심으로 모였던 제자 단체로서 교회라는 조직체를 만들고, 그것의 모태였던 유대교와 그렇게 빨리 결별하고 독자적 노선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교회 설립자의 문제는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쉽지 않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그리스도교 운동은 예수에게 그 기원이 있기는 하지만 유대교에서 분리되어 조직된 교회의 설립자를 예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교 운동은 예수가 창시(創始)한 것이고 그 운동이 지속되면 그것의 성격상 하나의 교회로 발전할 수 있다는 평가는 내릴 수 있어도, 예수가 역사적으로 그 교회를 설립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성서적 역사적 자료가 이것을 증언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상황은 신학과도 관계가 깊다. 신학이 교회를 예수께서 세우셨다고 말할 때, 예수의 공생활이나 어떤 선포가 교회를 설립했다고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예수의 죽음, 부활, 승천과 성령강림을 포함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교회의 기원으로 말한다. 예수는 부활 후 당신이 제자들과 함께 계실 것을 약속하면서 그들을 파견하신다(마태 28,18-20). 예수는 당신의 메시지 뒤에 계셨다. 그 메시지를 수용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수용하고 실천한 것이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예수의 제자됨이다.

예수가 베드로에게 하셨다는 약속을 마태오 복음이 전한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서 있었던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답하는 양식으로 된 예수의 말씀이다. "그대는 베드로(바위)입니다. 나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데 저승의 성문들도 그것을 내리누르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그대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습니다"(16,18). 이 텍스트의 해석사(解釋史)는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생각하는 로마 주교의 역할을 중요시하던 로마 가톨릭 교회와 다른 교회들 간의 공방으로 얼룩져 있다. 서로 다른 교회론이 서로 다른 해석을 하게 하였다. 오늘날 이 텍스트로써 베드로의 수위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신학자는 없다. 교회 설립에 대한 이 말씀은 모두 예수의 부활 후 시리아 교회의 전승이다.

이 텍스트에서 베드로에게 약속된 역할은 열두 사도들의 성소이다. "하느님 나라의 열쇠"는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음(마태 23,13; 루가 11,52)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교회의 설교를 상기시키는 표현이다. "저승의 성문들"에 대한 승리는 죽음과 죽음의 힘을 극복하는 예수와 예수가 파견한 사람들의 봉사를 의미한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나의 교회"라는 표현이다. "나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정의하는 교회이다. 예수는 하나의 특수 공동체 설립자다. 이 공동체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후에 나타난다. 예수의 말씀과 생애가 이 공동체 발생의 원리이다. 초대교회가 "내어주는 몸"과 "쏟는 피?"로 요약한 예수의 말씀과 생애이다. 교회는 내어주고 쏟으면서 봉사하신 "그분의" 교회로 있어야 한다.

2. 교회의 조직

교회는 예수의 말씀과 생애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안에 발생하고 발전한 교회의 조직 형태가 예수에게 기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교회의 조직과 제도를 하느님이 원하신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제도적 측면을 가지게 된 것은 예수의 제자됨을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교회가 발족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여 모든 사람이 예수의 구원적 의미를 들을 수 있고 그분이 열어놓은 해방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교회는 말씀, 성사, 실천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위한 실천들이 발생하도록 증언하는 집단이다. 예수가 그 시대 사람들을 위해서 하신 바를 교회는 역사 안의 각 시대 사람들을 위해서 한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사람들을 눈뜨게 하고, 친교를 살게 하여 복음을 사는 공동체를 만든다.

이렇게 발족하는 교회는 로마 제국 안에서 그 주변 환경이 제공한 사회조직 형태를 배워서 채용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313) 신앙의 자유를 얻고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380)에 로마 제국의 국교(國敎)가 되면서 교회는 제국의 제도를 수용한다. 비잔틴 제국 궁정의 화려한 문장(紋章), 복장, 의례 등을 흡수한다. 중세 봉건사회에서는 귀족사회의 질서, 습관,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 등을 배워서 교회의 구조, 질서, 및 전례 안에 흡수하였다. 유럽 중세 봉건사회가 정착하면서 주교들은 교회의 영주들이 되었다.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얻은 때의 지배적 사상은 신플라톤주의였다. 이 사상이 제공한 이념 안에서 교회는 여러 계층과 서열이 있는 피라미드와 같은 조직이 된다. 하느님, 그리스도, 교황, 주교들, 신부들, 부제들, 그 밑에 수도자들이 있고 그리고 평신도들, 먼저 남자들, 그리고 여자와 어린이들이 있다.

16세기 교회 분열 이후 개신교 운동이 민주적인 교회 체제를 택하자 가톨릭 교회는 소위 반종교개혁이라 불리는 대개신교(對改新敎) 반작용으로 교계제도의 권위가 하늘에서 주어진 것임을 더 강조하게 된다. 유럽 국가들은 절대군주들이 통치하고 교황은 교회를 위한 절대군주로서의 위상을 가지게 된다. 교황을 거슬러서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과거 특수 교회론의 정점이다.

트렌토 공의회(1545-1563) 이후 교회의 이런 표상들이 법제화된다. 교회에 대한 모든 권한은 로마 교황에게, 교구에 대한 모든 권한은 주교에게, 본당에 대한 모든 권한은 본당신부에게 집중된다. 19세기에는 이탈리아 중부를 차지하던 교황령의 상실과 근대사회의 출현을 거슬러서 교회는 피라미드식의 교회조직을 더욱 강화한다. 교회는 로마 교황을 중심으로 조직된 절대군주 사회이며, 주교들은 각 교구에 임명된 교황의 총독들이고 신부들은 이 총독들이 먼 들판에 있는 양떼들을 위해 임명한 대리자들이다.

교회에 대한 이런 표상을 정당화한 것은 성령이 교회의 저변에까지 일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교계제도의 봉사직무 안에만 성령이 일하신다는 착각이다. 또 한 가지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가 정의한 교황 무류권(無謬權)을 교회 내 질서 확립의 원리로 착각한 데서 비롯한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가 된다. 신앙은 낮은 계층이 높은 계층에 순종하는 것이다. 신자들은 교회의 의사결정에 전혀 참여하지 못한다. 그들은 사목적 배려의 대상일 뿐이다.

무류권은 교황 개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개인과 연결시켜서 이해하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서도 이단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 번도 단죄되지 않은 이단이다. 교회 공동체 전체의 이름으로 취해진 교황의 결정이나 공의회의 결정이 무류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런 결정들도 그리스도교 진리에 대한 한 시대적인 표현일 뿐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복음을 왜곡하지 않고 보존하기 위한 성령의 도우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뿐이다. 결코 교황 개인을 높이거나 그가 하는 일의 실효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교황 개인은 그 인간 됨됨이 그대로 있는 것이다. 비범할 수도 있고 평범할 수도 있으며, 민주적일 수도 있고 권위주의적일 수도 있다.

가톨릭 교회는 사회조직을 위해서는 민주화를 지지하면서 교회 자체를 위해서는 비민주적인 조직을 고수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소외의 원인이다. 이렇게 비실효적 조직을 고수하는 이론은 하느님이 교회를 세우시면서 교회의 구조마저 직접 정하셨다는 것이다. 교황과 주교들의 권위는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것이지 하느님 백성이나 교구의 위임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가 그 권위와 교계제도를 강조한 나머지, 교회 자체가 지닌 진리, 특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해방하는 자유를 은폐하면, 교회는 구원을 선포하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지 못한다. 예수 시대 율사와 제관들이 유대교에 대해 주장하던 것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오늘날 신앙인들은 신앙의 구원적 성격이 교회의 교도적(敎導的) 권위에 그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고 있다. 교회가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 진리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요한 8,36) 하느님의 자기계시이다. 하느님의 자기계시는 먼저 죽고 부활하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역사적 형태를 지니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진리는 선포와 제도화라는 구체적 역사 형태 안에 자리잡고 있다. 교회의 선포와 제도화는 예수 그리스도에 준하는 것이라야 한다. 교회가 권위를 가지고 말하려면 먼저 권위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실천이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실천

예수의 삶은 제자들에게 어떤 해방과 기쁨이었고 그들을 위한 진리였다. 그들은 그 삶을 오늘 우리가 가진 복음서들의 언어 안에 축소하여 담았다. 언어는 우리 삶의 이야기를 그대로 다 담지 못한다. 시대가 달라지고 문화적 여건이 달라지면 옛날 사람들의 언어는 우리의 언어와 또 달라진다. 원초에 그들이 예수의 삶 안에서 발견한 그 해방과 기쁨은 우리가 새롭게 해석하면서 우리의 언어와 삶 안에 살려내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해석을 하지 못하고 과거의 언어만 반복하면, 우리는 옛날 언어 안에 박제(剝製)된 삶의 이야기만 만날 것이다. 박제된 것은 생명이 없기에 우리의 삶을 움직이지 못한다.

그 시대 예수의 제자들에게 예수의 생애는 인간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다. 철저하게 종교적 규율들을 강요하는 유대교의 기득권층이었다. 율법과 제사의례는 인간에게 노예적 순종을 강요하고 있었다. 예수는 그런 것이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자유가 아님을 가르치고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는"(요한 4,24) 참다운 자유를 실천하신 분이다. 하느님은 인간이 자유롭기를 원하시는 분이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나오신 아버지"라는 구약성서의 하느님에 대한 호칭이 말하는 바이다. 하느님은 인간이 참으로 자유롭도록 인간이 만든 모든 차별을 없애시는 아버지이시다. 부모의 사랑은 자녀들의 차별을 원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신다"(사도 10,34).

우리는 차별을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재물을 두고 우리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별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권력과 지위를 두고도 강자와 높은 자가 약자와 낮은 자 위에 군림하고 횡포하는 것을 우리는 당연한 질서라고 생각한다. 혈연(血緣), 지연(地緣), 학연(學緣) 등 우리는 연고만 있으면 차별을 만들고 그것을 우리의 당연한 질서인 듯 생각한다. 유대인들에게 율법과 성전도 차별을 만드는 기회가 되었고, 그 차별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절대화되었다. 건강은 하느님이 주신 축복이었고, 병고는 하느님이 죄인들에게 내리신 벌이었다.

예수는 이런 차별을 거슬러서 할 실천이 있음을 가르친 분이다.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시오"(마르 10,21)라는 예수의 말씀이 있다. 베푸는 사람으로 변한 세리 자캐오를 보고 예수는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습니다"(루가 19,9)고 말씀하신다. 재물은 많이 가져서 사람들 사이에 차별을 만드는 수단이 아니라, 베풀어서 차별을 없애는 수단으로 삼을 때 구원이 있다는 말씀이다. 예수는 사람이 사람 위에 군림할 수 없다고, 당신 자신도 섬기는 사람으로 제자들 가운데 계시다고 말씀하신다. 권력은 군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종과 같이 섬기면서 차별을 없애는 수단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마르 10,43).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생기기 않았습니다"(마르 2,27)고 말하면서 율법이 사람을 차별하는 수단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복음서들 안에 반복되는 "당신의 죄는 용서받았소"라는 말씀이나 예수께서 실천하신 병고침은 하느님을 빙자하여 차별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들이다. 사람들이 차별대우하는 죄인들과 세리들이다. 예수는 그들과 어울리면서(마태 9,11-12) 그들을 차별대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분이다.

흔히들 하느님은 거룩하시고 우리는 죄인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하느님은 또 차별의 원인이다. 그러나 실제로 성서 안의 하느님은 차별이 아니라 초대이다. 복음에 자주 나오는 잔치의 비유는 하느님의 거룩하심이 우리의 참여를 기대하는 초대라는 것을 말한다. 하느님을 높고 강한 분으로, 그래서 우리와 차별되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은, 높고 강한 사람들이 많은 우리 삶의 이야기를 하느님에게 투사(投射)한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차별을 없애는 우리의 노력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은 거룩히 빛나시라"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는 차별을 없애는 실천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차별 안에 안전과 보람을 찾는 그 사회의 기득권자들이 예수를 제거한 것이다. 예수는 하느님에 대해 논하지 않았다. 예수는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 준해서 행동할 것을 사람들에게 촉구하신 분이다.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변하고 새로운 실천이 있을 때 하느님의 나라가 있다.

오늘 교회가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차별을 없애시는 분인가? 그래서 그분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고 진리인가? 예수를 믿는 사람은 구원받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예수는 차별을 만드는 분이지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이 아니다. 하느님께 많이 바치면 많이 구원받는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언어라면 예수는 차별을 없애시는 분이 아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권한과 지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기득권층이 교회 안에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빙자하여 차별을 조장하는 집단일 수는 있어도 예수를 실천하는 교회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늘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 환경오염, 인종차별, 특히 우리 나라의 외국 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 남녀 성차별, 교통 혼잡 등을 위한 우리의 사명은 외면하고 교리를 믿고 성사에 참여하여 은총을 받으라고 강요한다면 우리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성당이 속하는 그 지역사회 안에서 차별을 없애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미사를 위한 교통 혼잡과 소음만 일으키는 공동체라면 차별을 조장하는 공동체일 것이다. 그러면 예수는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루가 2,10)일 수 없다. 사이비 종교 집단은 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외면하고 재물과 권력으로 사람을 철저히 차별한다. 재물과 권력은 교주와 그 집단의 기득권층에 집중되고 사람들은 사회에서 격리되고, 다스려지고 죽는다.

예수님 시대에 하느님이 율법 안에 혹은 성전 안에 계시지 않았듯이, 오늘 하느님은 우리의 교리언어 안에 격리 수용되지 않았고, 높다는 사람들과도 함께 계시지 않는다. 하느님은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겸손한 사람들과 함께 계시다. 사람을 위하고 섬기는 사람들 안에 계시다.

예수로 말미암아 시작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우리 사회가 통념적으로 정당화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하라는 우리 자유에의 호소이다. 그 노력이 있는 곳에 하느님은 우리의 숨결로,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진리고 또 우리 생명의 기원이신 아버지로 우리와 함께 계시다.

4. 성령이 살아 계시는 교회

사도행전이 성령강림 장면(사도 2,1-4)을 각색하여 전하는 것은 교회의 시작은 성령이 하신 일이며 교회 안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숨결이 있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성령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권위의 근본이며 원천이다. "성령에 힘입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1고린 12,3).

교회 안에 있는 직무의 권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실천을 발생시키는 데에 있다. "진리의 영, 그분이 오시면 여러분을 모든 진리 안에 인도하실 것입니다. .... 그분은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니, 이는 내 것을 받아서 여러분에게 알려 주시겠기 때문입니다."(요한 16,13-14). 성령이 오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실천이 나타나게 한다는 말씀이다. 봉사직무는 하느님으로부터 "맡겨진 것"(1디모 6,20; 2디모 1,14)이다.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사람들"(요한 17,6 참조)을 위해 예수는 죽기까지 봉사하셨다.

성령은 바벨탑과 같이 획일성을 강요하지 않는다. 성령은 기적이나 방언과 같은 비일상적인 능력을 주는 분도 아니다. 성령은 베풀고 살리면서 차별을 없애시는 하느님의 숨결이다. 성령은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 안에서 각자의 창의력을 동원하여 다양한 봉사를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다. 하느님의 자비로우심과 용서하심이 우리 안에 발생하게 하시는 분이다. 이해타산과 권력의 남용으로 얼룩진 우리의 세상에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기쁨이 발생하게 하시는 힘이다. 배타적으로 흐르기 쉬운 종교인들의 언어와 권위주의로 흐르기 쉬운 봉사직무자들의 언어를 넘어서 하느님 일하심의 보편성을 나타내시는 분이다. 하느님의 영은 모든 사람 안에서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일하신다.

하느님은 역사 안에 계시지만 황제나 권력자나 고위 성직자와 같은 모습으로 계시지는 않는다. 교회 안에 주인과 종, 또는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관계는 없다. 교회 안에 성령을 빙자하여 지배자로 행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루가 22,25-27). 교회 안에 신분적 서열이나 계급은 있을 수 없다(갈라 3,28; 골로 3,11 참조). 교회 공동체가 지닌 피라미드식의 교계제도적 구조에 얽매이지 않는 성령이시다. 피라미드식 제도는 신자들을 저변으로 밀어냈다. 신자들 안에 일하시는 성령이 외면당하면 교회는 그 본연의 성격을 상실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계제도라는 권력구조를 하느님의 이름으로 포장하여 성령의 일하심을 봉쇄하고 있다. 신앙은 세상의 말에 귀기울인다. 권위와 지도력은 신자들 안에 일하시는 성령을 들음으로써 발생한다. 기득권을 주장하면 듣지 못한다. 성령의 일하심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나가는 말

교회의 조직과 제도를 예수의 지상 생애와 관련지으려는 노력은 부질없는 일이다. 교회도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 시대에 있던 가장 이상적인 단체 조직을 흉내내어 교회를 조직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는 "역사 안의 사회적 실재"이며 그 시대 사회로부터 "여러 가지 도움을 받는 것이다"고 말한다. 로마 제국 시대의 교회가, 그 조직에 있어서 로마를 중심으로 한 제국의 중앙집권적 제국주의 제도를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보았다고 해서 탓할 일은 결코 아니다. 중세 유럽 봉건사회의 교회가 봉건제도의 문물(文物), 곧 세속 영주와 같은 주교직, 복장, 관습, 의례 등을 수용하였다고 해서 탓할 일은 아니다. 그 시대에 가장 효율성 있는 조직과 제도는 그것밖에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 단체의 실효성이 군주제도나 봉건제도로써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각자가 자유스럽게 기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만이 그 단체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을 위해 우리 가톨릭 교회는 다시 태어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우리 교회의 제도와 문물이 어떤 실효성을 지니는지를 물어야 한다. 복음은 친교와 봉사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제도는 과연 자유스런 친교와 봉사를 조장하는 것인지, 혹은 사람들을 차별하여 봉사하고 싶은 마음마저 좌절시키는 것인지 물어보아야 한다. 스스로 새로워지지 않는 생명체는 살아남지 못한다. 스스로를 쇄신하지 못하는 집단은 그 집단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오늘과 같은 정보 다원 세계 안에서 본당이나 교구의 인사와 재정의 모든 권한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그것이 장기적으로 보장되면, 인간의 일이라 여러 가지 폐단이 생기게 마련이다. 권한을 가졌다는 사람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여 듣고 중의를 모으는 수고를 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귀에 거슬리는 말은 멀리하고 찬양하는 말에만 귀를 기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취해지는 결정들은 그 공동체를 위해 최선의 것일 수 없다.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경청하고 그것을 고맙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현대 다원사회 안에서 한 인간이 인간 노릇을 하며 살기 위한 최소한의 덕목(德目)이다.

권한을 가진 사람이 한 인간으로 미성숙하거나 함량 미달이면 그 공동체를 위해서는 비극이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이라는 것을 분별없이 남용하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에 그 공동체가 입는 물질적 정신적 피해는 막대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교회의 아성 안에서도 책임있는 자리에 기한 없이 장기로 있으면 부패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도 하느님이 주신 조직과 제도라고 생각하고 하느님이 하신 일이라 놀랍게만 보고 있어야 하나?

한국 가톨릭 교회에는 관보(官報)는 있어도 언론은 없다. 공론과 비판이 없는 단체는 발전하지도 못하지만 부패하게 마련이다. 신앙은 높다는 사람들을 찬양하는 데에 있지 않다. 우리가 복음 앞에서 함께 반성하고 비판하면서 창의력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를 찬양하는 사람은 신앙이 있고,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은 신앙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목자는 그야말로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신앙이 있고 없고는 하느님이 아시는 일이지 사람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예수를 재판하고 처형한 제관들과 원로들의 논리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현재 한국 교회 안에 강론은 위기를 겪고 있다. 우리는 복음 앞에 겸손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알아듣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복음을 읽어야 한다. 스스로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한 자료로 복음에 접근하면 복음은 말하는 것이 없다. 예수는 섬김을 살았다. 군림을 위한 지혜를 제공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의 실천에서 해방과 구원을 느끼지 못하고, 그와 반대로 억압과 빼앗김과 굴욕을 느낀다면 하느님은 우리의 실천 안에 계시지 않는다. 고해성사, 미사, 헌금, 이런 것이 사람들을 돌보아주는 하느님을 넓은 세상 안에서 실천하기 위한 수단이 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해방도 구원도 아니다. 성당 안에서 우리가 하는 실천들은 넓은 성당 밖의 세상에서 하느님의 함께 계심을 살기 위한 활력소가 되어야 한다. 성당 안의 실천 그 자체가 우리를 하느님에게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의 현장은 성당 안이 아니다. 성당 안에서 결말을 내라고 주신 우리의 생명이 아니다.

한국 교회는 최근 막대한 투자를 하여 여러 교구가 신학교를 지었다. 신자들의 큰 희생이 있었다. 물론 예상했던 대로 입학 정원은 반도 차지 않는다. 한국 교회가 신학교를 일곱 개나 운영할 만큼 많은 교수 요원을 가졌는지도 의문이다. 1975년 광주 대건신학대학 교수들의 집단사퇴 파동 때도 주교들은 학생들이 받을 교육의 수준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주교에게 순종 잘하는 신부들을 만들라는 주문이었다. 윗사람이 정보를 독점하지 않는 현대 다원사회 안에 순종은 사람의 실효성을 제고(提高)하는 것이 아니라 저하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제직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은 종합대학과 같은 넓은 곳에서 다른 젊은이들과 어울려서 자기의 신앙과 소명에 대해 말해보면서 영성적으로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 중세사회와 같은 단순한 세상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격리되면 될수록 영성이 발생하는 것 아니다.

양식 있는 신자들이 교회를 외면하고 있다. 그들의 솔직한 말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들은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말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떠날 것이다. 제도권에 몸담은 사람들의 대오각성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평신도 신학자들을 집중적으로 양성해서 삶의 장에 새로운 복음체험과 표현들이 발생하게 해야 한다. 높은 사람 존경받고 낮은 사람들 하릴없는 우민(愚民) 교회를 만들지 말자. 현실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들을 귀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