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톨릭 교회는 초대 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새해의 첫날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내오고 있습니다. 이 날은 성탄 팔일 축제의 마지막날이기도 합니다. ‘천주의 성모’라는 말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말입니다. 홀로 거룩하시고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는 어머니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성모님을 두고,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를까요? 이것은 바로 예수님에 관한 신앙 고백입니다. 토마스 사도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이 신앙 고백은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천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활동하시다 죽었던 인간 예수를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입니다.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이 신앙 고백의 또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성모님에게 사랑하는 제자를 아들로 맡기셨고, 또 사랑하는 제자에게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게 했습니다. 그 제자는 성모님을 제자 공동체로 모시고 가서 모든 제자 공동체가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천년 동안 계속해서 성모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의 어머니로 계십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오늘,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기억합니다. 성모님께 이 한 해를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우심과 전구를 청합니다. 또 우리에게 성모님을 어머니로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한 해를 시작합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님은 오늘을 ‘세계 평화의 날’로 정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것은 교황님의 뜻이 아니라 성모님의 뜻이었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이 날, 정말 세상 모든 자녀들이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라시는 어머니의 뜻이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을 기억하지만, 사실은 오늘 성모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기도와 사랑을 쏟아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성모님을 기억할 뿐이지만, 우리는 항상 성모님의 기도와 사랑 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자녀는 어머니의 존재를 쉽게 잊어버리지만, 어머니는 단 한순간도 자녀의 존재를 잊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어머니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어머니로부터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의 삶의 시작은 어머니와 함께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해의 시작도 어머니와 함께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어머니 없이 우리가 삶을 시작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한 해의 시작도 어머니 없이 우리가 시작할 수 없습니다.

 2023년을 시작하는 오늘,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올 한 해를 온전히 맡겨드리도록 합시다. 내 뜻대로, 내 맘대로, 내 계획대로 하는 한 해가 아니라, 성모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도록 성모님께 올 한 해를 맡겨드립시다. 우리가 성모님께 우리의 하루하루를, 매순간을 맡겨드릴 때마다 우리는 성모님 품 안에 계시는 아들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성모님은 항상 아들 예수님을 품에 안고 아들 예수님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