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로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흔히 옛것은 고리타분한 것, 보수적인 것, 더 이상 이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옛것이 없으면 새것도 있을 수 없고, 전통이 없으면 질서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켜야 할 것들이 사라지면 무질서와 혼란이 난무하게 되고,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것들마저도 잘 모르게 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이 시대가 이렇게까지 된 것은 종교와 윤리의 세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인들은 기술 문명의 발달에 자유주의 상업화의 바람을 타고, 눈앞의 이익과 많은 재산을 모으는 데에만 열중하면서, 인류 문명을 이끌어온 종교와 윤리의 세계를 내팽개쳐 버렸습니다. 그런 세계는 이제 옛것이 되었고,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이며 박물관에나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에도 우리가 지켜왔던 아름다운 전통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시대에 맞지 않는 전통들을 시대에 맞게 바꾸어 나가야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전통들 안에 담겨져 있는 그 정신과 얼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학교에 가면 공부를 해야 하고, 직장에 가면 일을 해야 하고, 성당에 가면 기도를 해야 하는 것처럼, 설날이 되면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낳아주신 조상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제사도 지내고, 친척들이 함께 모여 앉아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사랑과 정을 나누며 함께 음식을 먹고, 또 신앙인들은 성당에 가서 미사를 봉헌하며 조상들과 친척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 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야고 4,13-15)

 지금 우리들이 정말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깐 왔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존재는 하느님으로부터 왔고, 하느님께서 뜻하신 때까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머무를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찾고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고리타분하게 들리는 분들은 자신에게 직접 큰 병이나 고통이 닥쳤을 때, 혹은 죽음이 갑자기 찾아왔을 때 그때서야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바라고 욕심내던 세상 것들이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는 것들이었는지, 나의 건강과 존재가 얼마나 약하고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를 그때서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새해의 첫날입니다. 새해의 첫날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새로운 한 해를 좌우합니다. 이 한 해는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많은 것들을 조금씩 되찾을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 한 해를 정말 ‘온고지신’의 해로 삼아 소중한 옛것들을 찾고 익혀서 새것을 제대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