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세 번에 걸쳐 제자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건네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21.26) 부활 이전에 예수님은 이런 인사를 제자들에게 건네셨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실 부활 이전에는 예수님과 열두 제자가 늘 함께 지냈기 때문에 굳이 이런 인사를 나눌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모든 제자들의 배반, 죽음과 부활 사이의 이틀의 시간적인 공백, 그 이틀 동안 제자들이 느껴야 했던 엄청난 두려움과 절망과 좌절, 혼란, 공허함, 예수님께 대한 죄송한 마음 등등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 왜 갑자기 예수님께서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걸까요? 평화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을 때 내 마음 속에 평화가 없고, 반대로 내가 누군가로부터 용서받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내 마음 속에 평화가 없습니다.

 용서해야만, 또 용서받아야만 내 안에 참된 평화가 생겨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이유는 이미 당신께서 제자들의 죄를 다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늘 용서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그때그때 낱낱이 파헤치고 따지셨다면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께 용서받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용서받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용서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용서해 주시는데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얼마나 모순된 일입니까! 우리가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하느님께로부터 용서받았으며 또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거나,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부족하고 약한 인간입니다. 부족하니까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릅니다. 약하니까 깨어지고 부수어지고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나도 부족하고 너도 부족합니다. 나도 약하고 너도 약합니다. 누군가의 어떤 모습이 나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사실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어떤 모습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날마다 용서해 주시는 이유는 우리의 부족함과 약함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알면 알수록 나를 용서하는 길이 열리고, 그 사람을 알면 알수록 그 사람을 용서하는 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열 길의 물속보다 더 알기 어려운 것이 한 길 사람 속이라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속조차도 내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그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