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즉, 죽으시기 전 제자들과의 마지막 아가페 자리에서 그들과 나누고 있는 대화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소에도 종종 제자들과 함께 잔칫집에 가서 먹고 마시며 신나는 아가페 자리를 만드셨지만, 이 마지막 아가페 자리는 예전의 아가페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제자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시고, 사랑을 쏟아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의 마음과 가르침과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 이르러서도 제자들은 진정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최후의 만찬이라는 이 마지막 수업에, 유언을 남기는 순간까지 제자들이 이렇게 모르고 있으니, 예수님의 마음이 정말 애가 타고 답답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제 교육이 아니라 아예 당신을 믿어달라는 간절한 부탁의 말씀까지 하고 계십니다. 그만큼 상황은 긴박했고, 제자들의 몰이해는 극에 달했으며, 동시에 예수님의 초조함도 극에 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기도를 마치면서 최후의 만찬이 끝나고, 예수님은 잡히셨으며, 제자들은 모두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스승님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 스승님이 약속하셨던 성령을 받으면서 스승님의 그 모든 말씀들을 깨닫게 되고, 스승님이 가신 그 죽음의 길을 모두 다 따라 걷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참으로 어리석고 별 볼일 없는 죽음들이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눈으로 볼 때는, 제자들이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을 참으로 알아듣고,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택했기 때문에, 그 길은 죽음의 길임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길이며,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새 제자인 우리들도 제자들이 택한 그 길을 그대로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 복음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봉헌하는 매일의 미사가 바로 예수님과 우리의 마지막 만찬 자리이며, 이 미사 중에 예수님은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에게 극진한 사랑을 쏟아 붓고 계십니다. 우리도 비록 제자들처럼 스승님의 그 사랑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그 말씀들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스승님께서 가신 그 길을 그대로 걷겠다는 마음을 늘 간직하며 산다면 우리도 언젠가 그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오늘날 그 길이 꼭 목숨을 바치는 죽음의 길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상처들, 그리고 삶 자체가 주는 십자가들을 묵묵히 지고 걸어갈 때, 그 걸음들이야말로 스승님과 제자들이 걸었던 바로 그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