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주 카톨릭 방송 사제의 눈 2월 24일자  원고 입니다.



사제의 눈(08 02 24) 

숭례문 화재에 비쳐

 얼마전 우리나라의 국보 1호로 지정된 남대문이 불에 타는 안타까운 일이 생겼습니다. 전국민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불타오르는 남대문을 보아야 했습니다. 많은이들이 발을 동동 굴리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그 불타 버린 남대문을 두고는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습니다.

 국보 1호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니, 문화재를 아무 방비책도 없이 개방한 사람의 탓이니, 문화부 장관의 잘못이니, 현 서울 시장의 탓이니 하는 누구 누구의 탓이니 하는 말들도 많습니다. 또한, 3년안에 재건축을 한다는 것이 옳으니 그르니 혹은 국민 성금으로 다시 짓자고 이야기를 한 대통령 당선인의 생각없음에 분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타버린 남대문처럼 많은 국민의 가슴 또한 재가 되었고 비록 이역만리 먼 땅 미국에 살고 있지만 제 마음 역시 아쉽고 안타까움이 맴돕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아쉽고 안타까운가요? 사실 내 집이 내 재산이 불타는 것도 아닌데, 그런 차원에서 “내 것도 아닌데 뭐” 하는 마음으로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못하고 아련하니 아쉬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퍼해야 한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슬퍼해야 할까요?

 국보를 잃었다는 것이 슬픔의 원인이 되어도 좋을 것입니다. 600년이나 된 역사의 소중한 자산을 잃었다는 것이 눈물의 원인이 되어도 좋습니다. 너무도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한 허탈감이어도 좋습니다. 소중한 것 문화재 하나 지키지 못한 미안한 마음, 국가의 무기력에 대한 원망이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 말고도 무엇인가 더 소중한 것을 잃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것에 대해서 더 슬퍼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숭례”라는 뜻입니다. 남대문은 그 명칭이 “숭례문”입니다. 그러면 숭례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제가 알고 있기로는 예를 지키는 것이 숭례이고 예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 숭례이고 또한 그 예를 살아가는 것이 숭례입니다.

 즉, 그 숭례문은 예를 지키고 정신적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예를 살아야 한다는 뜻을 지닌 문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 이유때문에 숭례문이 대한민국 수도 한 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국보 1호라는 이름을, 그 자랑스러운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600년이라는 역사를 지닌 오랜된 문이긴 합니다. 하지만 수천년 된 문화재들은 세상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은 중세 유럽시대에만도 상상도 못할 문화 유산이 있습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재이기 때문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문화재 가운데 세상에 내 놓을 만한 문화재는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그렇기에 감히 국보 1호라는 명칭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중의 하나는 그 이름의 숭고한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저 보물의 순번을 매기는 과정에서 그것이 수도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만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숭례문이 불탔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의 그 소중한 삶의 예의가, 삶의 소중한 의미가, 예를 지켜야 하는 삶이 불탔다는 것이 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인터넷으로 숭례문이 불에 탄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부터 우리나라는 예를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귀하고 존경 받아야 하고 지켜져야 할 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그렇게 우리 삶의 귀한 가치관이 무너지다 보니 우리 삶도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예를 들면 그렇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권위, 교권에 대한 권위가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공부는 학원에서 하면 되고 학교는 전혀 인격의 교육장조차도 되지 못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학문의 권위에 대한 예의도 잃어 버렸습니다. 그렇기에 전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쟁이, 사기꾼이 되어 버린 황모 박사가 있었습니다. 가짜 학위라도 만들어 출세하면 되는 신모양이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어른에 대한 공경이 무너졌습니다. 그저 육체적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어른이고 아이라는 구별을 하는 것은 일차원적 단순한 생각입니다. 

육체의 나이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책임이 있는 사람에 대한 상호 존중의 예의는 가장 기초중에 기초적인 예의중의 예의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서로간에 그 예의를 지키지 못해 문제를 야기시키는 소식들을 듣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민족이 지닌 소중한 정신문화재를 숭례문처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기에 우리가 국보를 잃은 것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고귀한 정신의 값어치를 잃고 있는 것에 대해 슬픔을 표현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면 그런 소중한 정신적 값어치를 잃은 이유는 무엇때문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돈이라는 마귀에, 물질적 값어치를 정신적 값어치보다 더 중히 여기는 물질만능주의라는 귀신에 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단적인 예가 또한 숭례문 화재입니다.

70이 된 노인이 물질적 피해에 대한 원한으로 불을 질렀다고 했습니다. 물론 노인에게 물질적 풍요는 중요한 요소중에 하나이겠지만 그렇다고 “물질적 피혜에 대한 원한으로 소중한 것에 불 질러 버리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돈이라는 귀신에 홀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안빈낙도”라고 했습니다. 무릇 나물을 먹고 냉수 한 잔을 마실 뿐이라도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려는 선비정신이 있는 우리 나라였지만 그 정신이 물질에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 경제 성장, 경제 발전이라는 이름 앞에 과거의 숱한 잘못과 비리들도 은근슬쩍 눈감아주는 세대가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숭례문 화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장자가 어느 날, 남루한 베옷을 입고 띠를 띠고 헤어진 짚신을 신고 위 나라의 혜황을 찾았을 때 혜왕이 비꼬듯이 물었습니다.

 “선생은 어찌 그처럼 피폐하십니까?” 그러자 장자는 대답하기를 “선비로서 도덕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은 피폐한 것이지만 옷이 헤어지고 신이 뚫어진 것은 가난한 것이지 피폐한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현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장자의 대답입니다. 내 몸을 치장하고, 내가 가진 것을 뽐내는 물질중심이 아니라 드러나는 행동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에 무너진 숭례문을 세우는 것도 중요한 것이지만 그보다 무너진 "숭례"를 살리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더 시급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질의 “풍요, 대박 터지세요. 부자 되세요.” 라는 인사가 아니라 우주를 가슴에 안고 땅과 하늘을 움직일 수 있는 삶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인사하고 추구하는 삶 그것을 먼저 찾고 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숭례문의 숙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라는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감히 이렇게 인사를 드립니다. “참 가난하십시오. 그래서 참 행복하십시오. 참 좋은 하루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