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ing이 중요하다.

 -탈레반 인질 사건에 붙여서>

 학생 때 울릉도로 졸업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가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울릉도의 절경은 비경 그 자체이고 그 섬이 내걸고 있는 주제 “신비의 섬”이라는 말이 딱 맞는 참 아름다운 섬입니다. 성산봉을 오르고, 작은 여객선으로 섬 주변의 여러곳을 관광하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절벽위에서 드넓은 바다를 내려다보며 황홀함에 취해 있을 때 한 친구가 더 이상 진입하지 말라고 세워 놓은 말뚝 위로 올라가서는 두 팔을 쫙 펴고는 가슴에 바람을 맞습니다. 아마도 어느 영화의 포스터를 흉내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려 와라 위험하다.” 한 발만 잘 못 디디면 천길 낭떠러지 그 유명한 울릉도의 오징어 밥이 되기 좋습니다.

“멋있지 않냐?” 멋있기는커녕 보고 있는 제가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섭습니다.

“00아 위험하다 좀 내려와라.” 
“괜찮다 신경 쓰지 마라.” 
“좀 제발 하지 말라는 짓은 안하면 좋겠다. 네가 반항기 십 대도 아니고 떨어지면 어떡할려고 그러냐? 그건 용기가 아니고 만용이다.” 
그러자 그 친구가 자존심이 상했는지 “야! 내가 죽더라도 상관마. 내 목숨이니까 알겠나?” 옆에 있던 다른 친구들은 아무 말도 없습니다. 그냥 ‘남의 일’이니 내지는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표정들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안에서 화가 확 일어났습니다. 그렇기에 화난 목소리가 거침없이 튀어 나옵니다.
 “그래, 네 목숨이니까 죽어도 좋다. 네가 떨어져서 죽던지 말던지 상관 안한다. 그런데 만일 네가 다치면 우리 졸업 여행은 끝이고, 그 뒷감당은 우리가 해야 하는데, 다음에 너 혼자 와서 말뚝을 올라가던지 말뚝하고 같이 뛰어 내리던지 마음대로 해 그래도 지금은 내려와. 나는 너 때문에 고생할 생각 없다.” 그리곤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기니 그제서야 말뚝에서 내려오더군요.

 누구나 “오늘은 사고를 내야 하겠다.” 마음먹고 사고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잠깐 방심한 사이에, 조금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괜찮을 거라고, 말뚝에 올라가도 된다고 생각하다가 사고가 생깁니다. 아주 작은 판단의 착오로 인하여, “내가 하겠다는데 왜?” 라는 방종한 생각, “설마 나에게?” 라는 겁 없는 마음에, 경고를 빤히 보면서도 안일한 생각이 우리를 지배할 때에 문제는 발생하고 맙니다.

 “내 목숨이니까 내가 알아서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술 마시고 운전해도 됩니다. 마음껏 과속해도 됩니다. “내 목숨 내가 알아서 하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술 먹고 혼자 죽고 과속하다 혼자 죽으면 ‘내 목숨 내가 알아서 한다’는 논리에는 괜찮지만, 엄한 목숨,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도 해치게 될 위험이 크니 음주 운전, 과속 운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술 못 마시고, 과속 할 줄 몰라서 안하는 것 아닙니다. 마구잡이로 끼어들기 할 줄 몰라서 안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법을 지키려고 하고 위험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나의 불편이 내 욕망의 자제가 모두에게 편안함과 안정을 주기 때문입니다.

 아프카니스탄으로 봉사 활동을 하러 간 사람들이 잡혀서 인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목사 한 명과 인질 한 명이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분명히 “위험 지역이니 여행을 자제 해 달라” 경고가 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갔습니까? 위험하다는 것, 조심해야 한다는 것, 내전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불과 몇 년 전 한 생명이 살려 달라고 외치며 죽어 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몰랐단 말입니까?

굳이 지금 당장 그 곳으로 가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까?

 선교가 목적이 아니고 봉사가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백 번 이해하고 양보 합니다.
그러나 선교가 아니고 순수한 봉사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늑대들 가운에 양들을 보내는 것과 같구나. 너희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해야 한다.” 하셨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슬기로움과 지혜 그리고 선함과 평화를 지녀야 한다는 말입니다. 순수한 봉사이든지, 순수한 선교이든지 그게 어떤 것이던지 올바른 판단을 지녀 소나기는 피하고 마른 볕은 비껴가는 지혜로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부러 소나기를 맞고 마른 볕을 찾아야 할 때가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 있을 때입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었다면 진정으로 목숨을 걸만큼 중요하다면 정말 목숨 걸고 죽더라도 하나의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시간차가 참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아직 죽기에는 너무도 억울한 젊은 남편의 장례식에 많은 조문객들이 찾아 왔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젊은 부인은 사실 옆에 있어 줄, 인생에 도움을 줄 만한 친인척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그 가족들과 잘 알고 지내는 평소의 이웃들이 많은 도움을 전하였습니다. 
한국식 장례의 풍습에는 남은 사람을 위로 해주고 돌보아 주기 위해 밤새워 함께 있어 주는 정이 있지요.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만 그 자리가 술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심지어 간간히 누군가의 농담에 웃음소리도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한 사람이 울고 있는 부인에게 말을 건넵니다. 
“죽은 사람은 죽더라도 살 사람은 빨리 살아야지요. 힘 내세요.” 여기까지는 참 좋습니다. 그런데 차마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꺼내고 맙니다.
 “저 어린 것들 데리고 살려면 얼마나 고생이 많겠소? 내가 좋은 사람 소개 하리다.”

 지금 남편 돌아가신 지 이틀 되었습니다.

부인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슬픔에 목이 메이는데 술판을 벌이고 앉아 농담속에 왁자지껄 웃음이나 터트리고 술기운으로 이야기를 하던지, 아니면 정말 선하고 고운 마음, 걱정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던지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가리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시간차가 있어야 하는데 틀려먹었습니다. 타이밍이 안맞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는 웃고 농담하며 술 한 잔 마시자고 모인 자리가 아닙니다. 지금 그 사람에게 재혼을 꺼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산 사람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인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그게 봉사가 되었든, 선교가 되었든 잠시 비켜야 할 시간입니다. 봉사나 선교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잠시 비켜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 비켜야 할 시간을, 안일한 마음, 방종한 마음, 그리고 잘못된 판단이 온 국민을, 온 나라를 불편하고 힘들게 합니다. 걱정하고 근심하게 만듭니다.

어디 가족들만 그러합니까? 생면부지인 저 역시 그저 걱정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시간차가,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슬기와 지혜, 최소한의 올바른 판단이 필요합니다.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입니다. 

2007, 7, 30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