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방 여인의 믿음-Facebook에 jinwoo ma 신부님의 글
작성자:
sung hwan james         8/5/2015
내용:

이방 여인의 믿음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마태 15,28)

예수님이 말하는 ‘믿음의 크기’란 과연 무엇일까요? 성경의 표현대로라면 ‘믿음’만 충분히 지니고 있으면 뭐든 가능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얻기 위해서 수많은 신앙인들이 믿음을 찾아 헤매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많은 신앙인들은 이 믿음을 뭔가를 쌓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기도를 하고 많은 영성 강좌에 참석하고 신학적 지식을 쌓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하느님을 찾기 위한 노력과 하느님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자신의 믿음을 증가시켜 주리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 그들의 가상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뭔가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거룩해 보이는 것’ 근처에 머무르면서 그들을 접하고 그들을 만지면 뭔가 달라질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지를 찾아다니고 고위 성직자와 친분을 쌓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 뭔가 달라질거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이 부류의 사람들 역시도 결과적으로 뭔가가 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습니다.

참된 믿음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복음의 이방 여인에게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방 여인이 예수님에게 당한 것은 말 그대로의 ‘모욕’이었습니다. 곱상하게 이야기해서 성경에는 나름 아름답게 표현된 것이지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이 개같은 여자야, 난 내 자식 먹이기에도 바빠. 나는 너같은 이방민족 따위에게 온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지요. 여인으로서는 엄청난 모욕이고 수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여인의 대꾸는 엄청난 것이었지요.

“네, 주님. 저는 개 맞습니다. 제 자녀들은 강아지(개새끼)들이 맞구요. 하지만 개들도 주인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여인은 자신을 향한 낮춤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청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여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믿음’의 표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믿음은 뭔가를 쌓고 재어서 우리가 그걸 딛고 높아지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낮고 낮아져서 우리가 거의 사라질 정도가 되어야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 안에서 우리는 빻아지고 으스러져 가루가 되어야 비로소 그 생명의 빵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바로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그 길인 셈입니다.

제가 아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나 스스로를 들어높여 다른 이의 우상이 되고 주목을 받으면서 그런 안락함과 편안함과 화려함 속에서 하늘나라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식의 발상은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배워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십자가’를 배웠습니다. 씨앗은 죽어 없어져야 살아날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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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 교리서
226 유일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하느님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해서 그것이 하느님께 가까이 가게 하는 것이면 선용하고 하느님께 등을 돌리게 하는 것이면 멀리하도록 해 준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저를 당신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을 거두어 가소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저를 당신께 가까이 가게 하는 모든 것을 주소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저를 당신께 온전히 바치기 위하여 저 자신을 버리게 하소서.”(플뤼에의 성 니콜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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