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Facebook에 Jinwoo Ma 신부님의 글
작성자:
sung hwan james         4/3/2016
내용: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철이는 발이 부르트도록 성당에 열심히 다니면서 음악을 사랑하는 친구입니다. 하루는 가톨릭 단체에서 주최하는 콘서트장에 갔습니다. 어느 가톨릭 콘서트에서 사회자가 외칩니다.
- 하느님을 사랑합니까?
- 네!
- 그럼 사랑한다고 외치세요! 하나! 두울! 셋!
- 하느님 사랑합니다!!!!!!
철이는 아주 흐뭇한 마음으로 콘서트 후에 집으로 돌아옵니다.
- 얘야 오늘 어디 갔었니? 말도 없이?
- 아, 엄마가 무슨 상관이야?!
- 걱정이 되어서 그러지.
- 교회에서 하는 콘서트 갔다왔다. 왜?
- 그랬구나. 재미있든?
- 아, 좀 짜증나니까 그만 물어!
그러면서 엄마 등을 떠밀고 방문을 쾅! 하고 닫아 버립니다.

영희는 교사생활을 아주 열심히 하는 친구입니다. 날마다 교안을 짜고 연습을 하고, 신앙학교 같은 게 있는 날이면 12시에 들어오는 게 기본입니다. 오늘도 영희는 성당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회식도 마치고 술이 얼근하게 되어서 집에 들어갑니다. 엄마가 문 앞에 서 있습니다.
- 오늘도 모임하고 온거야?
- 아, 보좌 신부님하고 같이 있었어.
- 그래? 그래도 그렇지 지금은 너무 늦은 시간 아니니?
- 아, 내가 뭐 다른 일 한다고 그래? 성당일 한다고 늦는 거잖아? 성당 가지 마까? 하느님 믿지 마?
- 아니 그게 아니라…
- 그럼 좀 내버려둬!
영희는 걱정스런 얼굴의 엄마를 내버려두고 자기 방에 쏙 들어가 버립니다.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요한 5장 4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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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 교리서
239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신앙의 언어는 주로 두 가지 측면을 가리킨다. 먼저 하느님께서는 만물의 근원이시고 초월적인 권위를 지니셨으며 동시에 당신의 모든 자녀를 자비와 사랑으로 보살피신다는 점이다. 하느님의 부성은 또한 모성의 모습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데 이는 하느님의 내재성 그리고 하느님과 당신 피조물 사이의 친밀성에 더 주목하여 가리키는 것이다. 이처럼 신앙의 언어도 부모들에 대한 인간적 경험에서 도움을 얻는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인간인 부모들이 그릇될 수도 있으며 부성과 모성의 모습을 왜곡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성별을 초월하신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분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하느님이시다. 그분은 인간적인 부성과 모성의 근원이며 척도이시면서도 이를 초월하신다. 아무도 하느님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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