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기사와 사제
버스는 남녀노소 모두를 위한 대중교통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버스 기사는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만을 고를 수는 없습니다. 버스를 타려는 사람 모두를 가리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제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이에게 자신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사제는 자기 혼자만 즐기기 위한 스포츠카의 운전자나 부자만을 위한 고급 승용차 기사가 아니고, 모든 사람을 위한 버스 기사입니다. 따라서 버스 타기를 원하는 사람 모두를 차에 태우는 버스 기사처럼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제들의 모범이신 예수님 역시 한 사람도 제외되지 않고 모든 이를 구원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버스에는 노약자를 위한 특별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친절한 버스 기사는 노약자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으면 승객들에게 권고를 해서라도 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사제도 모든 이를 위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특별히 늙고 병들고 약하고 소외 받는 이들을 위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버스 기사는 기분 내키는 대로, 자기 편한 대로 운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노선을 충실히 따라가야 합니다. 노선을 따라 가면서 승객들이 불안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운전해야 합니다. 출퇴근 시간에 차가 밀린다고 해서 난폭 운전을 해서는 안 됩니다. 버스 기사가 기분 나는 대로가 아니라 정해진 노선대로 운전하듯이, 사제도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최고의 규범으로 삼고 사셨듯이 사제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버스가 규정된 노선을 지키지 않고 난폭하게 달린다면 승객들이 불안에 떨게 되듯이, 사제가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대로 산다면 신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괴로움을 안겨줍니다. 그런 사제는 나중에 예수님께 큰 야단을 맞을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루카 12,47).
버스는 정해진 노선을 지켜가면서 정류장마다 정차해서 기다리던 사람들을 태우고 갑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는 인생 곳곳에 서있는 이들을 교회라는 버스에 싣고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로 향합니다. 시간에 쫓긴다고 정류장을 그냥 지나쳐서 간다거나, 뛰어 오는 사람이 있는데도 그냥 출발해 버린다면 좋은 기사가 아닙니다. 좋은 버스 기사는 조금 늦게 오는 승객들을 친절하게 기다려 줍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도 인생 여정에 곳곳에서 신앙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에게 언제라도 문을 활짝 열어주고, 조금 늦게 오는 이들을 짜증내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죽음에 임박해서 자비를 구하는 죄인을 받아들이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예수님이 늦게 오는 사람들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셨으니 사제도 그래야 합니다.
버스 기사가 출발 전에 버스를 잘 점검하고 기름도 충분히 넣어 두는 것은 기본적 준비에 속합니다. 중간에 기름이라도 떨어져서 버스가 서 버린다면 난감한 일이지요. 마찬가지로 사제도 충실한 사제 직무 수행을 위해 평소에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기도와 영성 생활이 바로 그것입니다. 외적인 활동과 취미 생활에 정신을 빼앗겨서 기도와 영성 생활을 소홀히 한다면 언젠가는 기름이 다 떨어진 버스처럼 중도에 서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분주하게 사셨지만 자주 아침 일찍 혹은 밤늦게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마을 저 마을 다니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를 고쳐주셨고, 당시 종교 지도층의 거센 반대 속에서도 자신의 사명을 꿋꿋하게 수행하셨습니다. 이런 고단한 삶의 원동력이 바로 기도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과 일치하여 사셨기 때문에 엄청난 일을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는 예수님을 따르려는 이들에게는 필수적인 것으로서 기도 없는 활동은 오래가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고서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어려움과 유혹을 이겨나갈 수 없습니다.
버스 기사는 운전석에 홀로 앉아 있습니다. 오후나 밤 시간에는 피곤에 지쳐서 졸음이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옆에서 지켜봐 주고, 피곤하고 졸릴 때에는 말이라도 붙여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는 인생의 반려자가 없이 홀로 살아야만 합니다. 때로는 힘들기도 하고 외롭기도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에 홀로 계셨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제세마니 동산에 기도하러 가셨을 때 같이 왔던 제자들은 잠이 들어서 혼자 기도하셨습니다(마르 14,32-41). 또한 수난 전에 유다인의 최고 회의와 빌라도 총독 그리고 헤로데 왕에게 심문 받으실 때에도 혼자이셨습니다(루카 22,66-23,12). 그러나 그분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굳게 믿으셨기에 그 어려운 순간을 극복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제 역시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게 하느님께서 돌보아 주시고 신자들의 기도와 격려가 항상 뒤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버스의 기사는 사제이고 승객은 신자들입니다. 이 버스의 종점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이 버스에 탄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입니다. 이 버스에서는 노약자석이 유명무실하지 않습니다. 기사인 사제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길이 막혀도 인내로써 종점을 향해 갑니다. 승객인 신자들은 버스 기사가 운전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도와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버스 기사는 때로는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무엇보다도 보이지 않게 자신을 인도해주는 운전기사,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능한 분에게서 위로와 힘을 거듭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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