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사랑할 때 왜 ‘정신’만 들어높인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느님은 우리의 온 존재로 사랑해야 하는 분입니다. 그 말은 우리의 모든 감각과 상상력과 지력과 감정과 영혼을 모두 총 동원해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몸으로도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연물을 바라보면서 눈으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고, 귀로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거나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지요. 우리는 하느님이 마련하신 모든 지적 영역을 향유하면서도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쁨과 설레임과 두근거림으로 하느님을 사랑할 수도 있지요.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그려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영광을 묘사한 모든 화가들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은 바로 그들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우리는 하느님을 온 존재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고리타분한 신학의 틀에만 가두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학문을 좋아하고 연구하기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신학이 하느님을 배우는 영역이 되겠지만 일자 무식한 할머니라도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면서 그분의 영광에 대해서 묵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훌륭한 교리책이 되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39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신앙의 언어는 주로 두 가지 측면을 가리킨다. 먼저 하느님께서는 만물의 근원이시고 초월적인 권위를 지니셨으며 동시에 당신의 모든 자녀를 자비와 사랑으로 보살피신다는 점이다. 하느님의 부성은 또한 모성의 모습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데 이는 하느님의 내재성 그리고 하느님과 당신 피조물 사이의 친밀성에 더 주목하여 가리키는 것이다. 이처럼 신앙의 언어도 부모들에 대한 인간적 경험에서 도움을 얻는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인간인 부모들이 그릇될 수도 있으며 부성과 모성의 모습을 왜곡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성별을 초월하신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분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하느님이시다. 그분은 인간적인 부성과 모성의 근원이며 척도이시면서도 이를 초월하신다. 아무도 하느님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