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헌의 적합한 재료
필리핀에 ‘팜팡가’라고 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별다른 특색이 없는 도시가 유명해진 것은 사순시기만 되면 많은 이들이 몰려와 십자가에 실제로 못을 박고 매달리는 행위를 재현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바라보던 지역 주교님은 이러한 행위를 멈추도록 요청하셨습니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희생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작은 극기가 영적인 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의 권고입니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가톨릭교회를 힐난하고 나섰습니다. 그렇게 행할 용기도 없으면서 자신들의 경건한 뜻을 오히려 가로막는다고 비난하면서 말입니다. 교회의 건전한 권고를 무시하며 피를 흘리는 행위에만 몰두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만 비위가 상하고 맙니다. 소위 열심하다는 교우들은 ‘이렇게 해야만 진정한 신앙생활이다.’ 주장하며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간혹 목격하곤 합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하는 단식에 동참하지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주변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상황에 어울리는 재료를 택하여 각기 다른 형태의 봉헌예물을 드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머물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잔치로 여기며 기쁨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하느님을 빼놓은 신앙생활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류지인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
생활성서 2017년 1월호 '소금항아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