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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서였던가?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환담중이었다.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인간의 지나친 행위가 도마에 오르자 한 나이 지긋한 사내가 정색을 하며 그렇지만은 않다고 반론을 편다. “사람이 없으면 자연도 죽습니다. 오늘 나는 몇 년 만에 폐허가 된 고향마을에 다녀왔는데 동네 어귀에 있는 나무들이 다 말라 죽었더라고요. 마을에 사람이 떠나자 나무들이 하나 둘씩 말라가더니 이번에 가보니 모조리 죽었더라고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무들이 사람의 온기와 마을에서 나오는 구정물, 거름 등에 의지하여 살지 않았나 싶어요.” 처음에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럼 산 속에 저절로 자라는 나무들은 무언가?’ 하고 황당해 했지만 자리가 파한 뒤 집에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을 구성하는 요소는 단지 사람만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만든 집과 경작지, 나무들, 정자, 돌담, 그리고 전해 내려오는 제의와 잔치까지 모두가 마을이라는 유기체의 구성원이다. 그런데 마을의 주인인 사람들이 떠나 버리니 그들에 의해 창조되고 관리되던 유형무형의 구성원들도 시나브로 사라지는 것이다. 산 위에 있는 나무들은 애초부터 대자연의 섭리에 의해 나고 자라는 것이니 사람이 있고 없고가 문제되지 않지만 마을의 나무나 풀들은 다르다. 우리 옛말에도 “들판의 곡식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서 우리는 농부와 곡식의 공생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이것을 좀 더 추상적으로 정리하면 하나의 공동체 안에 몸 붙여 사는 개개의 생명은 공동체 전체의 생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공동체가 약해지면 그 안에 있는 생명들도 덩달아 약해지고 공동체가 아예 없어지면 그 안의 생명들도 함께 사라진다. 우리가 폐허에서 흔히 보는 잡초들은 대개가 외부에서 침입해 들어온 야생 잡초들이다.
날씨가 포근하여 주머니칼을 챙겨들고 봄나물이나 뜯어볼까 하고 마을 뒷산에 올랐다. 나무 그늘 속은 아예 풀이 없고 양지바른 곳에는 작년에 났다가 누렇게 말라 버린 억새풀이 빽빽하여 나물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직 이른가?’ 하고 마을로 발길을 돌리니 논두렁 밭두렁에 냉이며 쑥이 다금다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렇지! 나물이란 게 뭔가? 오랜 세월 사람과 접촉하면서 ‘나물’로 불리게 된 것이 아닌가. 공연히 나물을 구하러 멀리 나갈 필요가 없다. 농약을 안 쓰고 다양한 형태의 혼작을 하는 마을에서라면 마을 안에서 풍성한 나물을 수확할 수 있으리라.
● 황대권 대철 베드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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