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이어서 수난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와 화답송의 시편 22편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엄청난 모욕과 수난을 겪으신 뒤, 십자가에 못 박혀 6시간 가까이 고통스럽게 매달려 계시다가 숨을 거두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시편 22편이었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시편 22,2)

 예수님의 이 마지막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사랑 자체이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어떻게 하나뿐인 아들을 버리실 수 있는가?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들만 말씀하고 행하셨는데, 결과는 왜 이토록 비참한 죽음인가? 하느님은 꼭 이렇게 외아들을 고통스럽게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인류 구원을 이루셔야만 했는가?

 사실 이런 물음들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마음과 뜻을 우리 인간의 지성과 능력으로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신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도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무척 괴로워하시면서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모순적이게도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은 아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었습니다. 더욱 모순적인 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순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지만, 그저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물어야 합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의 수난과 죽음을 원하셨을까? 요한 복음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이 대답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모순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또한 우리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답은 아닙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답인데, 우리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거의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사랑에 대해서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1요한 3,16)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어놓으신 것,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아드님을 내어주신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알아듣기도 어렵지만, 우리를 위하여, 바로 나 자신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신다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며,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