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우리나라 교회의 순교 성인들을 기억하며 미사를 봉헌합니다. 순교가 무엇입니까? 순교란 죽음에 이르기까지 신앙의 진리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자신과 사랑으로 결합된 그리스도,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한 사람들입니다. 또 순교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교리의 진리를 증언합니다. 이 증거 때문에 순교자들은 용기 있는 행동으로 죽음까지도 참아 받았습니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짐승들의 먹이가 되게 놔두십시오. 나는 짐승들을 통해서 하느님께 이르게 될 것입니다.”(『로마인들에게 보낸 서간』 4,1) “이 세상의 매력도 현세의 왕국도 내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내게는 이 세상 끝까지 통치하는 것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하기 위해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그분을 나는 찾으며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그분을 나는 원합니다. 그분 안에서 내가 태어나게 될 때가 가까웠습니다.”(『로마인들에게 보낸 서간』 6,1)

또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흠숭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이며 주님을 본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순교자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의 왕이시며 스승이신 분을 향한 그들의 비할 데 없는 신앙심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그들의 순교에 동참하고 동료 제자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성 폴리카르포의 순교록』 17,3)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나를 사랑해주셨기 때문에 나도 그분을 증거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분들이 바로 순교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루카 9,24-25)

예수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라는 이 놀라운 역설을 끝까지 믿었던 분들이 바로 순교자들입니다. 그분들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 없이 이 세상 삶을 지속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선택한 분들입니다. 비록 지상에서는 박해와 시련 때문에 고통을 겪고 심지어 죽음을 겪게 될지라도 천상에서의 상급과 영원한 삶을 바라며 기꺼이 신앙을 증거했던 분들입니다.

순교자들의 이 놀라운 신앙을 묵상하면서 아빌라의 대 데레사 성녀가 우리에게 남겨준 아름다운 시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순교자들의 마음이 아마 이 시와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무엇에도 너 흔들리지 말며/ 그 무엇에도 너 두려워하지 마라/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 하느님께서만 변치 않으신다/ 인내는 모든 것을 얻는다/ 하느님을 가진 자는 부족함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도다.”(『시집』 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