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마지막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1-12)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주님의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습니다.

 

“겸손을 실천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군중과 제자들에게 이 덕을 상기시키시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을 제자들 가운데 세우셨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가르치시며 산상 설교를 시작하실 때에도 가장 먼저 이 덕에 관하여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자만심의 뿌리를 뽑으십니다.”(『마태오 복음 강해』 72,3)

 

구약의 집회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집회 3,18)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신자, 비신자를 막론하고 세계인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교황님은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더욱 낮추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기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낮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굳이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더라도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교만은 인간의 본성가운데 하나이지만 그와 반대로 겸손은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덕이기 때문입니다. 1987년에 가톨릭교회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2013년 세상을 떠난 작가 최인호는 그의 책 『인연』에서 겸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아름다운 성찰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습니다.

 

“자연은 위대하다. 자연의 그 위대함은 있는 모습 그대로에서 나온다. 자연은 인간과는 달리 아무것도 꾸미지 않는다. 있는 것을 없는 체 없는 것을 있는 체, 추한 것을 아름답게 치장하거나 위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때가 되면 싹이 트고 때가 되면 잎이 자라고 때가 되면 꽃이 핀다. 굳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없는 향기를 추하게 풍기지도 않고 색깔을 천박하게 바꾸지도 않는다. 자연은 겸손하게 자신의 모습을 수긍한다. 자연의 위대함은 그 소박한 겸손함에서 나온다.

 

겸손과 청빈의 대명사였던 성 프란체스코는 죽음에 임박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형제여, 하느님을 향한 나의 의지는 이제 겨우 시작일세.” 일생을 하느님을 위해 살고서도 죽음에 이르러 겨우 하느님을 향하게 되었다고 말한 프란체스코. 그와 같은 겸손이 프란체스코를 세기의 성자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진실한 겸손이 가장 위대한 생을 낳는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겸손인가. 어떻게 해야 겸손해질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오늘 문득 가을에 들어 낙엽이 지는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다 겸손에 대한 희미한 배움 한 가지를 얻었다. 어쩌면 겸손이란 자연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겸손이란 자연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일이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자기 모습을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고 미화시키거나 변명하지도 않는 모습을 나무처럼, 물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모습이야말로 겸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