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분도명상의 집 수도원 원장 김구인신부님께서

 

그간 안녕 하셨습니까?

부산 분도명상의 집 수도원에서 문안 인사드립니다.

 

한창 여름을 즐기고 방학의 여유도 부려볼 수 있는 계절입니다. 여유를 즐긴다거나 한가한 시간을 가진다거나 한

적한 곳을 찾아 명상을 한다하면 어쩐지 겸연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 세상처럼

보입니다. 한시도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무엇을 하더라도 바동거려야 그래도 세상을 따라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조바심에 어디가나 “빨리 빨리” 뛰어야 어느 정도 사는 흉내라도 내는 것 같은 세상처럼 보입니다. 일

반 사회생활 뿐 아니라 교회생활 신앙생활 가운데에서도 참으로 해야 할 일도 많고 배워야할 것도 많고 나가서 뛰

어야 할 그룹 단체도 다양합니다. 내 손으로 아니면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도와야 할 사람도 많고 그런 일들

도 다양합니다. 가까이는 우리 가족 우리 본당이나 교구 안에 멀리는 외국에 나가 있는 우리 선교사 신부님 수녀

님 평신도들도 모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린이들 청소년들 없는 이들 불쌍한 환자들 외로운 사람들 여러

가지 중독자들 의지가지없는 노인들 다양한 사회문제들 하나하나 다 들추어낼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일들이 우리

를 바쁘게 움직이도록 부추기고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성당을 다닌다고 하면 보통으로 최소한 이런 요구를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주일에는 꼭 성당에 나와 주일미사를 봉헌해야 하고 집에서 아침저녁기도를 바치고 식사 전후 기도와 삼종기도를
외우며 최소한 예수님 부활 성탄 대축일에 고해성사를 보아야하며 교무금도 주일 헌금도 바친다고. 적어도 하느

님을 모든 것 위에 사랑해야하고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기도 해야 합니다. 조금 더 보태자면 교회의 어떤 단

체라도 하나에는 가입하는 것이 좋고 인생의 여정에서 때가 되면 합당한 성사들 곧 견진 혼인 병자성사를 거행할

수 있도록 준비도 해야 합니다. 통상적으로 성당에서 사용하는 말로써 표현하자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주님께서 일러주시고 거룩한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그 계명을 지켜야하고 하느님의 사랑 곧 은총

을 받는 방법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옛 표현으로는 그리스도 신자로서 수계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

로서 신앙생활을 그런대로 한다고 하면 역시 사회풍조를 닮아 한가할 시간이 일초도 없을 정도로 바빠야 하는 것

처럼 부담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크게 부담을 느껴가면서 부지런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가끔 제가 듣다

보면 신앙의 여정이 공허한 것 같이 느껴지고 발전도 없는 것 같아 보이며 우리가 현대에 와서 즐겨 탐하고 있는

이른바 ‘성과’는 거의 없는 것 같고 !

그래서 오늘 이 편지에서는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안에 살면서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가 무엇인가

한 요소를 소홀히 한다거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수사님 수녀님 신부님들

의 생활리듬을 보면서 도움을 얻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남녀 수도자들의 생활리듬은 통상 크게 보아 인간 생리적 요청인 식사와 수면시간, 전례 곧 하느님께

교회 공동체로서 경배드리는 성무일도와 미사 그리고 여러 이름을 가진 개인기도 시간, 또 각 수도회나 공동체의

은사에 따른 여러 가지 일들 곧 사도직 활동을 하는 시간으로 짜여 있습니다. 이 요소들 가운데 오늘 우리 신앙생

활에서 가끔 소홀히 하거나 아예 알지도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개인기도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개인

기도의 현장은 겉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고 그 내용도 극히 개인적이어서 다양하며 여간해서 다른 사람들과 잘 나

누지도 않는 부분이어서 어떤 경우에는 없거나 수행하지 않는 것처럼 보거나 느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요소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내용과 형식이 다양해서 아주 넓고 막연한 이름은 묵상 meditaion이며 관상 성체

조배 성경독서 거룩한 독서 또는 성독 예수기도 향심 또는 구심기도 그리고 여러 형태의 사막 광야체험 피정 수렴

이외에도 특정한 이름들도 있을 수 있는 기도의 요소들입니다. 이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조용히 주님

과 홀로 만남’이라고. 어떻게 부르든지 그것은 주님과 홀로 조용히 만나는 시간이요 공간입니다. 수도자들의 이런

시간과 공간은 모든 활동과 사도직의 뿌리이며 기초입니다. 아니 이것이야말로 우리 신앙생활의 바탕입니다. 우

리 그리스도인의 생명입니다. 만일 어떤 수도자가 주님과 개인적으로 조용히 홀로 만나지 않고 산다면 모든 것은

그 의미를 잃고 말겠지요. 수도자에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도 그리스도 주님과 조용히 홀

로 만나지 않거나 못하고 산다면 ‘그리스도인 - 크리스쳔’이란 말은 당치도 않은 이름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 아

니겠습니까 ? !!

조용히 주님과 홀로도 만날 줄 아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선행도 자선도 이웃사랑도 전례도 성당의 여러 가

지 화려한 활동들도 다 좋습니다. 주님과 홀로 만나지 않거나 만날 줄 모른다면 이 모두 헛것입니다. 자! 지금까지

열심히 수계생활을 해왔고 순간마다 주님과 만나는 가운데 살아오신 형제자매 여러분 은총 하느님의 사랑을 풍성

히 받으신 것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토록 크시기 때문이지요. 신앙의 친구 여러분 지금 무슨 말

인지 알아듣기 어려우시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시작합시다. 마음을 열고 교회의 가르침을 들어 봅시다. 말

씀을 듣고 배우기 시작합시다.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옛 천주교 교리문답에 이런 질문과 답이

있습니다. ‘천주 무량하시뇨? 천주 무량하시니 아니 계시는 데 없어 곳곳이 다 계시나니라.’ 하느님께서는 어디에

나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니 믿고 마음만 열면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사제가 미사 때마다 외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대답합니다. “또한 사제와 함께 (계십

니다).” 우리 신앙의 고백입니다. 나와 함께 계시는 그 분을 조용히 홀로 만날 줄도 아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

다. 개인적으로 매일 잠깐씩이라도 시간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이런 경우 ‘화살기도’를 거듭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

다. 성경을 들고 천천이 읽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감실의 성체 앞에 앉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주님을 홀로 조용히

만날 때에는 영원한 생명수가 쏟아져 흐르는 기쁨의 환성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같은 신앙으로 이 인생을 함께


살게 되었으니 서로 감사드립시다 오늘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