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규정, 사랑과 용서

죄는 ‘규정을 깨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과 행동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안식일을 깨는 것은 나쁜 짓이 아닙니다. 규정은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수단일 뿐입니다. 세상의 규정은 하느님의 규정을 능가하지 못합니다.

성사를 보러 오는 많은 이들 가운데에는 ‘규정’을 어겼다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규정도 ‘나쁘게’ 어기면, 즉 하느님의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어기면 당연히 죄가 됩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모든 세세한 규정을 어겼다고 성사를 보러 오면 1년 365일 내내 찾아와도 모자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기에 ‘죄’에 대해서도 엉뚱하게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왜 오셨는지 이해하지 못하기에 ‘용서’라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엉뚱하게 해석을 합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은 무한한 사랑입니다.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우리가 뭔가를 해서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이기에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덧붙여진 무언가를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뭔가 실수로 다른 것을 덧붙인다고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오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본질이 변하기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우리 스스로 하느님에게서 돌아서고 멀어지기 시작한다면 그건 하느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즉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 서 있는데도 우리의 나약함과 오류로 뭔가 덧붙여지게 되는 것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용서에 관해서 이해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용서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받는 용서라는 것은 그분이 이미 온전하게 이루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 뿐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더해서 그 용서를 새로이 구입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요. 보속으로 묵주기도 100단을 바치면 용서 100개를 사고, 주님의 기도 한 번만 바치면 용서 0.1개를 사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용서는 이미 이루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요구되는 것은 ‘믿음’입니다. 이 용서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요구되는 것이지 다른 무언가가 필요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이 없으니 용서를 받고도 찜찜함이 계속되는 셈이지요. 용서는 얼마나 ‘완벽하게’ 고해성사를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느냐의 문제입니다. 즉 앞서의 ‘사랑’에 대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우리 실존의 변화가 요구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열심히 설명을 해도 추상적인 설명 자체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인 예를 들어 버리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규정처럼 적용하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진퇴양난이라고 하지요. 다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반복할 뿐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태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