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로마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제가 다녔던 학교와 제가 살았던 기숙사가 바티칸 바로 옆이어서, 교황님을 자주 보고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학생활 초기에는 이태리어도 서툴렀고 학교 공부를 따라가는 것도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바로 옆에서 교황님이 나와 계시는데도 그 시간에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교황님(베네딕토 16세)이 갑작스럽게 사임을 하시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의 교황님이 뽑히시기 전까지 약 2주의 기간 동안 바티칸에 교황님이 안 계셨습니다. 교황님이 늘 그곳에 계실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분이 안 계시는 바티칸과 성 베드로 대성당은 정말 쓸쓸하고 삭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우리 교회에 베드로의 후계자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고, 전임 교황님이 계실 때 그 소중함을 제가 잘 몰랐던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베드로의 후계자를 뽑기 위해 전 세계에서 추기경님들이 바티칸에 모이셨고, 교황 선출 회의인 ‘콘클라베’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신자들은 성베드로 대성당 광장에서 결과를 기다리는데, 시스티나 경당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나면, 교황님이 선출되지 않았다는 표시이고, ‘흰 연기’가 나면, 새로운 베드로의 후계자가 뽑혔다는 표시가 됩니다.

 

그래서 콘클라베가 열릴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역사적인 순간을 직접 보기 위해 성베드로 대성당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그때도 학업에 정신없이 쫓기던 때여서 우리 학교 바로 앞에서 콘클라베가 열리고 있었지만, 한 번도 광장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같이 수업을 듣던 멕시코 신부님이, 우리 일생에 이런 순간을 직접 볼 일이 앞으로도 없을 터이니, ‘검은 연기’라도 한 번 실제로 보러가자고 저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순간에 로마에 있었는데 ‘검은 연기’를 직접 보지 않으면 왠지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분과 같이 광장에 갔는데, 그 회의 때 교황님이 뽑히는 바람에 저는 결국 ‘검은 연기’를 보지 못했고, ‘흰 연기’를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흰 연기’를 보고 난 뒤 한 시간쯤 지나서 새로운 베드로의 후계자께서 성베드로 대성당 2층 발코니에 처음으로 나오셨습니다. 그 순간의 기쁨은 지금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반석으로 삼아 세우신 교회에는 베드로의 후계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정말 깊이 깨달았습니다. 목자 없는 양 떼가 존재할 수 없듯이, 반석이 없는 교회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신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정말 온 마음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금 교황님도 당신의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권고집인 『복음의 기쁨』에서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습니다. “백성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사명은 제 삶의 일부도 아니고 제가 떼어 낼 수 있는 장식도 아닙니다. 또한 삶의 부록도 아니고 삶의 한 순간만도 아닙니다. 이는 저 자신을 없애지 않고서는 제 존재에서 떼어 낼 수 없는 어떤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서 하나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여기 이 세상에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빛을 비추고, 복을 빌어 주고, 활기를 불어넣고, 일으켜 세우고, 치유하고, 해방시키는 이 사명으로 날인된 이들, 심지어 낙인 찍힌 이들로 우리 자신을 여겨야 합니다.”(273항)

 

오늘 교황주일을 맞이해서 지금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당신 교회의 반석으로 택하신 그분을 모든 악에서 지켜주시고 영육의 건강을 주시기를 함께 마음 모아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