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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교과서에 있었던 윤오영님의 방망이 깎던 노인 을 패러디한 글입니다. ($10)
벌써 2~3여 년 전이다.
내가 Morganville에 살 때다. 플러싱에 왔다가는 길에, 리치필드 한아름에 리치필드에 들려야 했다. 한아름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묵주를 깎아 만들어 파는 노인이 있었다. 묵주를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묵주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만들어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묵주알을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만들어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구역모임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이제 그만 만들어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구역모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묵주알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부리나케 만들어서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묵주다.
구역모임 시간을 놓친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 이다」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한아름 간판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묵주를 내놨더니, 마누라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묵주알이 너무 작으면 두세 개가 동시에 돌아가고, 너무 크면 엄지손가락에 쥐가 나기 쉽단다.
또 묵주알 간격이 알맞아서 한 단이 끝날 때가 명확해서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컴퓨터는 부품이 고장나면 해당 부품만 갈아주면 계속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요새 값싼 컴퓨터는 모든 부품이 일체형이라 고장이 나게 되면 컴퓨터 전체를 갈아야 된다.
예전에는 부품간 궁합을 따져서 조립하였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일체형이라 바로 조립을 한다. 금방 만든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값싼 컴퓨터를 며칠씩 걸려가며 조립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기도 봉헌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기도 봉헌을 하면 신부님은 얼마, 주교님은 얼마, 기도 양으로 구별했고,
교황님께 바치는 기도는 세 배 이상 더했다. 눈으로 봐서 10단을 했는지 100단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10단을 할 필요도 없고, 또 그것을 믿어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 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묵주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김치찌게에 소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토요일에 가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한아름 간판을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건물지붕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묵주 깎다가 우연히 지붕 끝의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採菊東籬不 (채국동리불)다가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정겸이가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다. 전에 묵주알로 구슬치기 하던 생각이 난다. 묵주를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묵주기도 바치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萬戶衣聲(만호도의성) 」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 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예전에 묵주를 깎아 만들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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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묵주 만들던 노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