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 저희들은 신고를 접수 한 이상 아주머니를 가족들에게 인도해야 되요.

그러니 저희

 여인은 침통한 표정으로 바닥을 한참 동안 내려다 보았다.

 “저기 젊은양반, 나 담배 한가치 얻을 수 있어요?”
 “여기 있어요. 어서 가족들에게 돌아가셔야죠?”
 “......”

 다른 한쪽에서는 술을 마시고 술값을 안 내도 도망가다가 술집 주인에게 잡혀 싸움을

한 30대 후반의 남자와 40중반의 남자가 서로 잘잘못을 따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고있었다.

 “야, 이시키야, 난 분명히 술 값을 네 마누라에게 줬어. 정말이야.”
 “이봐요. 아직 세상을 살날이 시퍼렇게 남은 사람이 술 값 몇푼에 인생을 걸다니, 내가

당신이라면 불알 한쪽을 떼어 내겠다.”
 “뭐야 이새꺄?”
 지구대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담배 한 대를 맛있게 다 피우고 난 여인은 잠시 정신이 들었는지 가방에서 거을을

꺼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참으로 많이 늙었네......”
 “이제 집으로 가셔야죠.”
 “이봐요. 절은 경관님. 난 정말로 갈데가 없어요.”
 “에이. 무슨 말씀 하시는거에요? 외국 여행 갔다가 오시면서 갈데가 없으시다니요?

비도 내리고 날씨도 으스스한데 어서 집에 가서 쉬셔야지요?”

  “이봐요, 젊은이 내 이야기 좀 들어보려오? 난 지금 빨리 이승을 떠나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이랍니다.”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부터 하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 보시고 이 땅에서 나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다시는 이 땅에 나오지 않도록 널리 홍보도 해 주세요.”

 “아주머니, 전 지금 근무 중이라고요. 긴 시간 이야기 들을 수 없어요. 간단히 말씀

하세요.”
 다행히 더 이상 경찰지구대에 민원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벽걸이 시계가

밤 12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여인은 다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더니 지그시 눈을

감았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H는 1997년 봄 자식들의 조기 교육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두 딸을 유학을 보내고 싶었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둘째 딸아이는 초등

학교 4학년 이었다. 남편과 상의해 마침 남편의 누이가 있는 C나라 Q시로 두 아이들을

유학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부모가 대학물을 먹거나 졸부가 된 부모를 만나 재수 좋은 아이들이 너두나두 외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H의 남편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 무역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훤칠한 외모와 능숙한 외국어 구사로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H의 남편은 외국을 자주 다녀 외국에 대한 아련하면서도 맹목적인 동경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내의 둘 아이들 조기 유학의 제의에 흔쾌히 찬성을 하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자식들에 대한 원대한 아내의 포부에 남편은 감동하였다. 두 딸

아이들을 유학 보내놓고도 H는 늘 외톨이로 지내야 했다. 남편은 일 년 중 반 이상을

세계를 돌아다니며 메디 인 코리아 제품 팔기에 눈 코 뜰 새가 없었다. 

 ‘10년 후면 우리 가족은 외국인이 되어 있을 거야. 이 땅의 지긋지긋하고 비효율적인

교육 풍토에서 벗어나 새롭고 아기자기한 선진국 시민이 되어 유토피아를 마음껏

누리고 있을 거야. 흐흐흐흐.’
 H는 자신의 결정이 정확하고 새로운 세계에 가장 잘 적응하는 주체라고 스스로

만족해 했다. 

 유학 간 두 딸들 역시 H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시누이로부터 두 아이들에

대한 찬사가 수시로 전달되었다. 학교에서도 H는 억척스럽고 똑똑하며 대단한 여자로

통했다. 그 뿐만 아니라 H의 고향이나 학교 동창들 사이에도 H는 늘 화제의 중심이

었다. 10년이 거짓말처럼 흘러갔다. 남편은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대학생이 된

 두 딸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위하여 C국에 나가 있었다. H는 그런 남편이 고마웠다.

 “형욱씨 아내는 언제 오신데요?”
 “내년 봄에 정년퇴직하면 온다고 하니까 반년후면 오겠군.”
 딸아이들이 등교하고 난 뒤 형욱은 집에서 애인 수지를 만나 밀애를 즐기고 있었다.

2년 전 우연히 교포들 모임에 나갔다가 눈이 맞은 것이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서로

외로운 처지로 자주 만나 식사를 하거나 공원을 걸으며 데이트를 하면서 차차 연인

사이로 발전하였다.

 “서울에 있는 당신 남편은 이상 없는 거지?”
 “그럼요. 내가 이곳에서 아이들 교육 잘 시키고 있는 줄 알고 있겠지요. 괴로워요

다시는 그이 이야기 꺼내지 말아요. 이 순간에도 전 그이에게 큰 죄를 짓고 있잖

아요.”
 수지는 두 눈을 감고 형욱의 넓고 따듯한 품을 파고들었다.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형욱의 큰 손이 수지의 젖가슴을 지분거리면서 촉촉이 젖어있던 수지의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수지의 행복에 겨운 교성(嬌聲)이 문틈을 비집고 거실까지 전해졌다. 형욱은 수지의

 신음 소리에 더욱 흥분되어 수컷으로의 역할에 정성을 다해 가며 수지의 은밀한

부위를 압박하였다. 수지아 10년 차이가 나지만 형욱은 나이에 비해 굉장히 젊어

보였다.

  긴 여정을 끝낸 형욱이 수지의 몸에서 떨어졌다. 쉰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불혹(不惑)을 넘긴 수지를 충분히 만족 시켜주었다.

두 사람은 죽은 듯 꼼짝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쾌락의 여운을 음미했다. 손아귀에서

보물이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형욱씨, 나 이제 어떻게 해요? 서울에 있는 남편과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이혼할 수도 없고, 괴로워 죽겠어요.”
 수지의 남편은 국내 대기업 임원이었다. 중학교 다니는 딸과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을

유학 보낸 전형적인 기러기 아빠였다. 수지는 두 아이들을 데리고 유학 오기 전까지

서울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신은 나만 믿어. 내년 봄 쯤 애들 엄마가 오기 전에 무슨 묘책을 써서 당신과 함께

지내도록 할 테니.”
 “안돼요. 무엇보다 아이들 교육이 다 끝나야 해요. 좀 더 기다려주세요.”
 “요즘은 평생교육인데 그럼 난 언제 당신과 오붓한 살림을 차려보누?”
 형욱이 일어나 담배 한가치를 입어 물었다. 거울에 비친 몸이 아직도 청년 같아

보인다. 창밖으로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늦가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곧 2편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