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과 물

사람에게는 옷도 필요하고 물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옷이라는 것은 사람의 겉에 놓여져 단순히 몸을 덥히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옷이라는 것은 사람의 외면을 가꾸는 역할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옷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동양인에게는 동양인의 옷이, 서양인에게는 서양인의 옷이 있지요. 저마다 필요한 형태의 옷이 있고 그것으로 가장 기초적인 욕구인 몸을 보호하고 싶은 욕구를 채우고 나아가 몸을 꾸미는 역할을 하지요.

하지만 물은 물입니다. 물은 맑을수록 좋지요. 그러나 물로 우리가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은 마실 뿐입니다. 그리고 좋은 물, 즉 맑은 물을 마실 수록 몸에 도움이 되지요. 반대로 더러운 물을 마시면 몸을 더럽히게 되고 병이 나게 되지요.

옷은 ‘문화’이고 물은 ‘신앙’입니다. 신앙이라는 말이 껄끄러우면 ‘내면의 가치’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앙인으로서 신앙을 통해서 모든 순수한 가치들을 제 안에 받아들이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말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서양인의 옷을 입고 서양의 사회 속에 녹아들어가듯이 문화라는 이름의 옷은 비슷하게 작용을 합니다. 하지만 ‘물’이 없으면 사람은 죽게 됩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옷이 되는가 물이 되는가, 아니면 둘 다 되는가? 이것이 한 선교사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질문입니다. 모든 것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물’입니다. 행여 옷을 잘못 준비해서 동양의 옷을 입고 서양에 갈 수도 있지만 이든 저든 우리는 옷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물’이 없다면, 우리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물이 없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거기에 있는 걸까요? 사람들에게 옷을 입히고 목말라 죽게 내버려둔다면, 과연 그런 행위가 무슨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일까요?

선교사는 무엇보다 물, 즉 ‘신앙’의 정수를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 없이 옷의 껍데기 형태만 가꾸려는 이들이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