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하느님 현존을 눈으로 머리로 확인 하려고 미친 듯이 헤매고 다녔던 시절에 어찌 어찌하다 로마행 비행기를 타고 성 베드로 대성전 앞에서 거대한 성당을 보며 보잘 것 없는 제가 하느님의 현존을 저울질 하고 있었다는 것에 가슴을 치며 회개 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보다 어마어마하게 훌륭하신 분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저렇게 성전을 지어야 했던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그 까닭을 어찌 알 수 있으리……. 그러나 그들이 하느님 현존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을 믿지 않았다면 그 옛날에 저런 어마어마한 성전 건축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결론을 냈고 ‘무조건 믿자 언젠가 예수님 현존을 체험 할 날이 올 것’이라고 결론을 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 서울에서 교회인지 대궐인지 구분이 안가는 대형 교회 앞을 지날 때 마다 저 돈 있으면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면 살면 좋지 않을까 라는 판단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옛날에 베드로 성전이 완공 되었을 때 지금의 저처럼 그렇게 판단하는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요?
가난을 살아야 하고 부의 분배를 외치면서도 성 베드로 성당 앞에서 인증 샷을 찍어 올리는 저는 무슨 잘못을 하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회개해야 할까요?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날카로운 회초리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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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인 시선

아테네에도 신전이 있고, 이집트도 피라미드를 지었고, 히틀러도 자신의 요새를 지었습니다. 외적인 건물은 외적인 건물일 뿐입니다. 물론 그 외적인 건물을 신심으로 지을 수도 있고, 반대로 탐욕으로 지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결국 외적인 건물은 외적인 건물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요.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요한 2,19)

우리가 하느님을 찾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지 않는 이상 우리는 여전히 오류에 빠져들게 됩니다. 하느님의 현존은 눈(보이는 사물), 혹은 머리(합리적 사고)로 찾는 것이 아니라 마음(영혼)으로 찾는 것입니다. 선하고 참되고 진실된 것을 추구할 때에 결국 하느님의 흔적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님의 겸손은 외적인 건물 앞에서 드러나야 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지극한 선과 사랑 앞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하느님이 위대한 이유는 온 우주를 창조하셔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신의 지극한 사랑의 끝없음 때문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무조건 믿기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충분히 분별할 거리를 주십니다. 그것은 외적 건물의 위용이나, 신학적 지식 체계의 합리성이 아니라, 바로 선한 삶과 악한 삶의 비교 체험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마음에 드는 방향으로 저마다의 결정을 하고 그 결정대로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을 좋아하는 이는 선을 추구하게 되고, 악을 좋아하는 이는 악을 따라가게 됩니다.

형제님의 혼란은 믿음을 보이는 것에서 찾으려 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다가 로마의 대성전을 보게 되고, 그 성전의 외적 위용으로 내적 분별을 그치고 믿음을 막무가내로 받아들인 것에 오류가 있습니다. 

외적인 것이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내적인 분별을 그치면 안됩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는 여전히 작용하고 있으며 그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의 내밀한 부르심을 뒤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형제님이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하느님을 따르는 삶이 ‘더 선하거나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더 올바른 무언가를 찾아서 길을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참된 하느님을 만나셨다면 그럴 일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올바름을 분별하는 능력을 부어주셨고 오직 하느님만이 그 갈망을 채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특정 종교에 실망을 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에게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구성원이나 특정 사건에 실망하는 것일 뿐입니다. 즉 참된 하느님을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외적인 모습에 실망을 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이리 저리 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형제님이 대형 교회 앞을 지날 때에 느낀 불편함은 아예 틀린 것이 아닙니다. 지나친 부의 축적과 과시는 결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지요. 하지만 그 분별은 하느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그 공간이 과연 정말 수많은 신도들의 집회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몇몇 개인의 과시욕과 탐욕으로 이루어진 것인지는 하느님께서 올바르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반면 단순히 그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내어줄 돈을 주지 않고 교회를 지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또한 잘못된 생각이기도 합니다. 비슷한 표현을 유다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 그분의 장례를 준비하는 여인을 두고 유다가 한 말이 있지요.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요한 12,5)

향유는 예수님의 장례 준비로 필요한 것이었고, 지금의 교회는 지금의 신자들에게 상응하는 여러 필요한 활동과 외적 건물들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진 것을 내어놓은 사람들을 두고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고 외적 건물만을 세웠다고 비난하려고 드는 것은 우리의 오류입니다.

나아가 무턱대고 가난을 외치는 것은 합당하지 못합니다.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하고 그 희생을 하느님에게 봉헌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가난이 그 자체로 선은 아닙니다. 가난은 해소되어야 하는 고통이지요. 또 자발적인 가난의 삶을 모두가 따르지 않는다고 분노하는 것은 독선과 교만에서 비롯되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적인 시선으로 모든 것을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게 됩니다. 막연히 이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고, 또 반대로 막연히 이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필요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난을 주장하면서 남들이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앙심을 품는다면 차라리 가난을 살지 않는 게 낫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이들에게서 부의 재분배는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탐욕스런 세상이 그 좋은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증오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 앞에 합당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정작 사랑해야 할 이들을 사랑하지 않고 대성전이나 유명 인사를 만나서 사진을 찍어 올리면서 사람들의 유명세를 즐긴다면 그런 인증샷은 문제가 있습니다.

반대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인 가난을 살아가는 모습은 칭찬 받을 일이고, 부의 합당한 분배는 이루어져야 마땅한 일이고 스스로 실천하는 모범을 보인다면 좋은 일입니다. 대성전을 통해서 우리 교회의 신앙 유산을 체험하고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것은 소박하고 기쁜 행위일 뿐입니다.

내적인 시선을 열고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방법으로 살아간다면 모든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좋은 것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