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15년 전에 사기를 당해 전 재산 날리고 설상가상으로 아내까지 그의 곁을 떠나 버리는 최악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실의에 빠져 술로 세월을 보내다보니 가족들의 냉대가 심해지고 결국은 집을 나와서 노숙자 신세가 되어 용산역 근처를 배회하며 지냈답니다. 

하루는 배가 너무 고팠지만, 그날따라 주머니엔 동전 한 푼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용산역에서 길을 따라 난 식당에 들어가서 일단 밥을 먹고 ‘돈이 없다’고 통사정해 보려고 했지만, 노숙자 차림의 그는 가게 문을 들어서지도 못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집은 소금을 뿌리고, 또 어떤 집은 개를 풀겠다고 위협하고, 진짜 살벌한 집은 우락부락한 주인이 그 사람을 집어던지다시피 내쫓았습니다. 

이렇게 문전박대를 당하자 그 남자도 악에 바치게 되었습니다. 용산역 인근 식당을 일일이 다 들어가 보고 몽땅 그렇게 나오면 밤에 휘발유 뿌리고 불 질러 버릴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삼각지 작은 골목에 있는 할머니네 국수집까지 갔습니다. 쭈뼛쭈뼛 들어서자 할머니가 자기 몰골을 보고도 환하게 웃으면서 “어서 앉아요.”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리고는 국수를 말아 주는데 태어난 후 그렇게 맛난 음식은 처음이었습니다. 허겁지겁 국수를 퍼 넣고 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그릇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더니 국수와 국물을 한가득 담아 다시 내주었습니다. 

이렇게 그 남자는 두 그릇치를 퍼 넣다시피 하고 나서 할머니가 다른 국수를 삶는 틈을 타 자리를 박차고 냅다 도망쳤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뒤통수에 대고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도망을 쳤습니다. 한참을 도망가서 겨우 멈추었습니다. 헉헉대면서 숨을 돌리는 차에 그의 귓전에 걸려 있던 할머니의 외침이 그제야 머릿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냥 가! 뛰지 마! 다쳐." 할머니는 그가 돈을 내지 못할 것을 미리 알고도 친절하게 맞아 주었고, 국수 한 그릇 더 퍼 주면서 웃어 주었고, 배은망덕하게도 말 한 마디 없이 도망갈 때에도 뛰지 말라고 외쳐 준 것입니다. 

그 날 그 남자는 용산역 앞으로 돌아가서 몇 시간을 펑펑 울었습니다. 자신을 속이기만 해 왔던 세상과 세상 사람들, 그리고 자신을 버렸던 아내와 가족, 친구들에 대한 미움으로 숨 막혀 가던 자신에게 그 할머니의 친절은 그야말로 숨구멍이었고, 따스한 불씨 한 조각이었습니다. 

그는 다음 날 냉대를 무릅쓰고 본가로 돌아갔습니다.그리고 몸과 마음을 추스른 후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거기서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았고 15년이 지난 지금 파라과이에서 꽤 큰 장사를 벌릴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국수집 할머니의 너그러운 마음이 사람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자신을 냉대하는 세상에 대한 증오심으로 굳어진 마음을 풀어주었고, 자포자기에 빠질 정도로 깊은 절망감에서 벗어나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국수 한 그릇이 힘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사람에 대한 따듯한 마음, 어머니의 손길같은 사랑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하직을 앞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복음, 13장 34-35절)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 오시어 우리가 그분처럼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청합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어려운 이들에게 기꺼이 ‘사랑의 국수 한 그릇’을 전해주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기원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