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썩을 놈아!
10여 년 전 해운대 성당 보좌시절 어렵게 얻은 휴가로 로마에 다녀오며 기념품으로 씨앗을 잔뜩 사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행했던 선물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커다란 씨앗에다 세례명을 새긴 것이었습니다. 그 씨앗을 땅에 심어두면 싹이 트면서 세례명이 적힌 부분은 영양분을 빼앗겨서 쪼글쪼글해지다가 결국 썩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떡잎은 무럭무럭 자라서 다시 열매를 맺었죠. 씨앗에 적힌 이름대로 베드로, 바오로, 요한 등등의 씨앗을 사가지고 와 사람들에게 선물하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마태오! 이 썩을 놈!” “요한, 이 썩을 놈아!” 어떤 이들은 기뻐하며 받았고 어떤 이들은 이걸 불쌍해서 어떻게 심냐고 했죠. 살아 있는 것은 썩지 않습니다. 죽지 않으면 썩을 수도 없죠. 우리는 죽어야 부활하는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어떻게 죽을 것이냐가 관건이겠죠?
하느님을 섬기는 삶은 죽음의 삶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희생으로, 사랑으로, 인내로, 우리는 폭삭 썩어 없어져야 할 존재자들임을 잊지 맙시다. 뭐, 결국 아까워서 심지 않은 사람들도 씨앗이 자연 부패하는 것을 보았겠죠? 열매도 맺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심어도 썩고 심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썩어버리고 마는 씨앗. 기왕 썩을 것 열매라도 맺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겠습니까?
김홍석 신부(부산교구) |
생활성서 2016년 8월호 '소금항아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