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운데 있는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은 단순히 우리가 이 생을 마치고 가야하는 곳이 아니라 벌써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 있는 하지만 '완성'되지 않았을 뿐인 나라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오해하게 되는 이유는 '시간'과 '공간'에 매여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느 완전한 시간과 공간을 원하기에 하느님의 나라의 현재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시간과 장소에 매이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의 통치'가 미치는 곳입니다. 결국 하느님의 자녀들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의 백성인 셈이지요.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세례' 그 자체가 하느님의 백성의 완료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각 인간의 내면의 선택이고 지향성입니다. 한 번 하느님을 선택했다고 선택이 끝나버린 게 아니라 꾸준히 하느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나라의 백성들, 즉 하느님의 자녀들은 당연히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여전히 이 세상에는 세상의 자녀들이 넘쳐 흐르기 때문이지요.

추상적인 말보다는 간단한 비유를 들겠습니다. 술을 즐기던 한 사내가 있었습니다. 술을 즐기는 건 죄가 아니지만 이 사내는 곧잘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 집에 들어가곤 했고 아내와 아이들은 그 모습을 지독히 싫어했습니다. 이런 그가 하느님의 백성이 되어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이제는 술을 '절제'하면서 마시기로 다짐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친구들은 그런 그의 내적인 변화를 모릅니다. 다시 회식 자리가 벌어지고 모인 친구들은 그 사내의 행동에 이상한 변화를 느낍니다. 술을 절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두둔하고 응원하기보다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타락시키고자 자꾸 종용합니다. '야!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나? 한잔해!' '에이, 쓸데없는 짓 말고, 술이 얼마나 맛있는데? 너도 알잖아? 한잔해!'라고 하면서 그 사내의 의기를 꺾으려 듭니다. 이런 간단한 예로도 알 수 있듯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들은 세상의 자녀들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나라는 시작되었습니다. 벌써부터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나라는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나라, 서로에 대한 용서와 사랑이 꽃피는 나라,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 험난한 세상 중에 하느님의 참된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성공'의 나라, 저 높은 권력과 명예와 부귀영화가 있는 나라를 수많은 이들에게 약속하고 그 길을 따르라고 하며, 많은 이들이 그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하느님의 자녀들은 세상을 향한 쓸데없는 노력을 버리고 '영원한 생명'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