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평화는 가식적인 평화, 거짓 평화가 아니라 진짜배기 평화입니다. 짜장이냐 짬뽕이냐를 쉴새없이 고민하다가 제비뽑기로 짬뽕을 선택해 먹으면서 속에는 짜장에 대한 미련을 잔뜩 지닌 평화가 아니라 배가 고프니 뭐든 감사히 먹겠다는 내면을 지니는 평화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평화를 기원하시지만 이 평화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 평화는 짜장과 짬뽕이라는 비유를 통해서 드러나는 ‘맛과 모양과 향’이라는 외적인 것을 넘어서서 보다 본질적인 것, 즉 ‘몸에 생명을 주는 영양분’에 이를 수 있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짜장이든 짬뽕이든 고민하지 않고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배가 고파질 때에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짜장이건 짬뽕이건 그게 동네 중국집이건 고급 중국집이건 전혀 상관없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많은 고난을 감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배고픔을 겪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몸은 때만 되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밥을 내어 놓으라고 아우성인데 우리는 그것을 잘 절제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불을 지른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불은 잡다한 것들을 태워 버립니다.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온갖 가식과 위선의 탈을 태워버리고 그 안에 있는 영원히 남을 것들을 드러내어주게 되지요. 마치 사람을 태우면 살이건 뭐건 다 사라지고 뼈만 남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이러한 불을 지르러 오신 것입니다.

이 불은 심지어는 가족 관계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집안에 산다는 것이 서로 같은 내면을 지니게 된다는 것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가족 관계 안에서도 서로 다른 내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결국에는 맞서는 두 상대가 드러나게 됩니다. 한 측은 하느님께로 다른 한 측은 세상에로 향해 있다는 것이 결국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용서하시는 분임에 틀림없지만, 이 용서에 본인의 선택이 배제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저주하는 이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시지만 그에게 구원을 강요하지는 않으십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불을 거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남는 것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불을 거쳐서도 남는 것이 있는 사람은 영원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