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구의 역할은 몸에 나쁜 균이 들어오면 그 균을 처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그 처리방법이 우리 상상하고는 아주 판이하게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강력한 힘으로 균을 죽이거나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슴을 열고 균을 품어주는 것이지요. 품에 안긴 균은 감당할 수 없는 사랑에 녹아 사라진다고 합니다.(물론 그렇게 상상하는 것이겠지요.) 균에게 너는 왜 그리도 추하냐는 소리도, 더럽다는 소리도 나쁜 놈이라는 소리도 하지 않고 발견하는 대로 가슴을 열고 아무 말없이 품어준다고 합니다.
다음은 적혈구입니다. 적혈구는 혈액에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 녀석은 늘 바쁘게 혈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산소가 없는 곳을 발견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산소를 그곳에 쏟아 붓고 사흘 정도 있다가 어느 구석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고 합니다. 이러한 백혈구와 적혈구가 있어서 우리는 지금도 숨을 쉬고 몸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순절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 죽음, 어두움, 악의 세력, 단식, 희생, 회개...
많은 단어들이 떠오르리라 봅니다.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무엇보다도 회개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순절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사순절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고통이 아닙니다.
그 고통을 보고 회개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순절의 참 의미는 그 고통의 배경이 된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는 기간이 되라는 것이지요. 그 사랑을 체험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회개라는 단어를 냉정히 말해서 쓸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희생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로지 우리의 행복입니다.
단식의 의미도 희생의 의미도 어두움 그 자체로 시작해서 끝을 맺는다면 그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지요.
사순절의 모든 행위는 그분의 사랑 체험으로 모아집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으로 인한 아픔에 동참하는 그래서 함께 힘이 되어드리고자 하는 것이지요.
백혈구, 적혈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몸 안에서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가능성이라는 말은 다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아마도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가능성으로서 살아야만 합니다.
무엇에 대한 가능성일까요? 그것은 그분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되고자 하는 가능성일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상처를 핑계로 환경을 핑계로 조건을 핑계로 누구보다도 자신을 가꾸어야 할 자신이 하느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자신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손가락질 하는 그 어느 누구의 몸 안에서도 백혈구와 적혈구의 사랑은 실천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 그분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본래부터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사순절, 모든 것을 돌이켜보면서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올바로 자신을 바라볼 때, 올바로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올바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서 타인을 향한 모든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지요.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행복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2011년3월9일 강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