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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웃집에 가서 낫을 빌려오라고 했다. 그러나 아들은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그 이웃이 호미를 빌리러 왔는데 아버지는 호미를 챙겨주었습니다. 이웃이 가고 난 후 아들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저 사람은 우리에게 빌려주지 않았는데, 우리는 왜 빌려주나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그 이웃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우리도 똑같이 한다면 그것은 복수와 증오란다. 하지만 상대의 행동이 어떠했는지 상관없이 필요할 때 도울 수 있는 것은 용서이자 자비란다.”

사실 이 예화의 아버지와는 달리 우리는 용서와 자비의 실천은 어렵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용서와 자비는 정말 ‘도’ 통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따돌림 당하며 불이익을 당하면 참을 수 없습니다. 분노와 증오와 복수의 칼을 갑니다. 

이런 나약한 우리에게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십니다. 예수님처럼 죽을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오셨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죽음의 공포보다는 죄스러움이 더 컸을 것입니다. 죽음의 길을 홀로 외로이 가시는 주님을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사랑을 다해 함께 했던 예수님을 팽개치고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죄의식에 사로잡혀 갇혀 있던 제자들에게 주님이 오셔서 하신 첫 말씀은 질타와 분노가 아닌 “평화가 너희와 함께”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의 나약함을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시기에 그들 내면의 평화를 빌어주십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하느님 자비’를 봅니다. 사실 주님은 하느님 자비가 사람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부활은 하느님 자비가 드러난 날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자비의 샘물을 부어주십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성령강림입니다. 성령이 계신 곳에는 자비가 흘러넘칩니다. 용서와 자비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성령의 힘을 통하지 않고서는 용서와 자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성령을 보내시며 주님은 우리에게 자비의 사도로 파견하십니다.

이처럼 하느님 자비를 체험한 사람만이 자비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안에서 하느님 자비를 체험합니다. 고해성사는 단순히 우리의 죄를 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느님 자비를 우리 마음 안에 모시는 은혜로운 순간입니다. 다른 형태의 영성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자비의 영성체가 완성되는 것이 성체와 성혈을 우리 안에 모실 때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자비 주일과 함께 올 한 해를 ‘하느님 자비의 희년’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은혜로운 하느님 자비의 희년은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도록 초대합니다. 

우리 삶으로 노래합시다, 하느님의 그 크신 자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