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씨는 싹을 틔우지 못한다
예수님을 모신 마르타는 바빠 죽을 지경입니다. 특별한 손님을 모시는 만큼, 집 안 청소도 깨끗이 해야 하고 음식 준비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만 듣고 있습니다. 좀 거들어주면 좋으련만 동생 마리아는 언니에게 일을 떠맡긴 채 예수님과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마르타의 모습은, 많은 일에 마음을 쓰며 걱정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입니다. 사실 우리는 마르타가 그랬던 것처럼 ‘분주하게(루카 10,40)’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이 끝나면 저것을 해야 하고, 저것을 마치면 또 이것을 해야 하고… 이렇게 정신없이 지내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바빠 죽겠는데 기도가 웬말이냐고 생각할 때는 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카 10,41-42) 여유가 생기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 여유가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숨 돌리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신앙생활을 잘 해야 바쁜 가운데에서도 한숨 돌릴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바쁘게 일하는 것은 좋지만, 바쁘게 일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인에겐 종종 고요히 머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시간이 필요합니다. 농사 경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움직이는 씨는 싹을 틔우지 못한다.’ 고요히 앉으십시오. 세상이 점점 빨라질수록, 세상이 점점 분주해질수록,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도록 몰아칠수록, 가만히 머물러 싹을 틔우는 씨앗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최법관 신부(청주교구 흥덕성당) |
생활성서 2016년 7월호 '소금항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