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민경일 신부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부본부장)
교황 프란치스코는 지난 22일 세계경제포럼 참석자들에게 “방대한 양의 식량이 남아돌고 종종 그냥 버려지는 한편, 매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나가는 현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교황은 “이런 이야기가 굉장히 수위가 높고, 때로는 과장되게 들릴지라도, 이번 회의에서 뭔가 변화를 만들어낼 능력을 보여 달라고 단호히 요구하기 위해 이런 말을 꺼낸다”고 호소했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거물 경제인들과 정치인들이 교황의 간절한 메시지에 얼마나 귀를 기울였는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교황의 호소는 실제로 전혀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여전히 전세계 인구의 20%가 하루 1.25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1993년 1월 마지막 주일을 ‘해외원조주일’로 정하고 불평등과 빈곤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스물한 번째 해외원주주일을 지내며,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부본부장 민경일 신부를 만나 해외원조주일의 의미를 되새겨봤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서울 세계성체대회 준비를 계기로 1989년 설립된 이래 국내를 비롯한 세계 50여 개국을 대상으로 나눔과 생명운동을 실천하는 천주교 NGO다.
 |
||
| ▲ 민경일 신부. 민 신부는 “가난이 없어지려면 적어도 마을 전체가 변해야 하고, 사회 구조 전체의 변화까지 담보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수진 기자 | ||
- 한국 가톨릭교회가 ‘해외 원조’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민경일 신부 : 교회의 입장에서 본다면, 해외 원조는 교회의 본질을 행하는 일이다. 예수님은 평생 동안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을 나누어주고 사셨다. 최후의 만찬에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좁은 의미에서는 최후의 만찬을 따라 전례를 거행하라는 뜻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희는 나를 받아먹어라”고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처럼 나눔을 행하라는 뜻이다. 나눔은 우리 교회가 예수님이 남겨주신 사명을 거행하는 것이다.
또한, 역대 교황님들로부터 내려온 가톨릭 사회교리는 우리에게 가난한 나라가 그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없을 때,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한 의무라고 가르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사목헌장> 88항에서 교회는 “국민의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풍부한 재화를 누리고 있는 반면에 다른 나라들은 생활필수품도 없이 기아와 질병과 온갖 불행에 시달리고 있는 ‘스캔들’은 제거되어야 하겠다. 청빈과 사랑의 정신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영광이요 증명이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러므로 불평등을 없애고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다. 우리가 이제 살만하니까 나누자는 ‘가진 자의 나눔’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실천으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나눔을 우리 삶 안에서 거행하는 성사적 의미의 나눔이다.
-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해외 원조 참여는 어느 정도인가?
2010년 한국 카리타스가 발표한 <한국 천주교 해외 원조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8년 가톨릭 신자 1인당 해외 원조 후원금은 2,017원이었다. 국제사회는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선진국들이 국민총소득(GNI)의 0.7%를 내기로 약속한 바 있다(2002년 몬테레이 컨센서스). 이 기준을 적용해 비교하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4천 달러였으므로, 1인당 해외 원조 후원금은 약 18만 원이 되어야 하는 거다. 지금은 2008년보다 증가했을 거라 기대하지만, 2,017원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우리 신자들이 아직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고, 또 우리나라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은데, 왜 먼 나라까지 도와야 하냐는 생각 때문에 마음을 잘 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해외에는 절대빈곤에 처해 인간 이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창조로 태어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가난이라는 사회적 여건 때문에 인간 안에 담긴 하느님의 모상이 훼손되고 있는 거다.
그리스도교 국가들은 가난한 이들을 더 많이 도와줘야 한다. 한국이 그리스도교 국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가톨릭교회 신자라면 우리 스스로 그러한 의무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연말연시에 불우이웃돕기 캠페인에 한 번 참여한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자신이 흐뭇한 기부이지 남을 돕는 기부가 아니다. 일회성 기부보다는 지속적으로 기부를 하시는 것이 좋겠다. 이번 해외원조주일을 계기로 정기적인 기부 활동을 하거나, 이미 기부하던 금액을 늘이는 것도 용기 있는 일이다.
- 대부분의 본당에서 해외원조주일에 2차 헌금을 장려하고, 많은 신자들이 동참한다. 현금 기부가 현실적으로 가장 쉽고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일 텐데, 이외에 다른 실천은 무엇이 있을까?
현금 기부 이전에 가톨릭 신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기부는 돈을 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그래야 기부금들이 제대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부를 하고 신경을 끄는 것은 내가 기부한 행위에 책임을 지지 않는 거다.
특히 가톨릭 신자 분들은 따지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선한 마음으로 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신다. 하지만 선한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으면, 그 과정도 선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는 것까지가 의무다. 그래야 저희 같은 기관들도 더 성장할 수 있다.
‘재능 기부’도 훌륭한 참여 활동이 될 수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도 외국어 번역 봉사자 분들이 집에서 자원 활동을 하고 계신다. 지원을 받는 국가 중에 우리가 접하기 어려운 언어를 사용하는 곳이 많다 보니 번역 봉사자들이 많이 필요해서다. 나의 시간과 재능을 내놓을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 최근 해외 어린이와 1:1 결연을 맺어 매월 일정액을 기부하는 캠페인이 인기인데,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는 결연 사업을 운영하지 않는다. 나름의 원칙이 있어서인가?
‘내가 이만큼을 도와서 아이가 이만큼 성장했다’고 지켜보는 태도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내가 한 달에 몇 만 원을 내서 그 아이가 빵을 먹었고, 나에게 감사 편지를 썼다는 것에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건 기부가 아니라 일종의 투자다. 아이를 돕는 일이 아니라 기부자를 만족시키는 사업이다.
실제로 결연 사업에는 몇 가지 인권 침해의 측면이 있다. 결연 캠페인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아이의 얼굴 사진과 이름, 나이가 나열된 목록이 있다. 아이를 선택하고 후원 버튼을 누르면, 담당자는 꾸러미를 들고 아이를 찾아가 사진을 찍고, 아이가 쓴 편지를 기부자에게 보낸다. 홈쇼핑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것과 거의 같은 방식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사람을 고르는 과정에서 인간을 대상화시키고 차별을 야기한다는 거다. 흔히 몇 사람이라도 선택해 공부를 시키면 좋은 것이 아니냐는 환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선택받은 아이들조차 제대로 교육받고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 선택된 아이와 선택받지 못한 아이의 차이가 지속돼 불평등한 구조가 이어지면,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의 삶은 이전보다 더 도태되고 비참해진다. 이들의 삶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내가 선택한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그들의 가난이 없어지려면 적어도 마을 전체가 변해야 하고, 사회 구조 전체의 변화까지 담보돼야 한다. 내 눈으로 당장 기부 효과를 보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작은 정성이 모이고 모여 그들의 가난이 통째로 없어질 거라고 믿을 때, 진정한 나눔이 가능해진다. 가난은 결코 한 달에 얼마씩 지원을 받아 덜 굶는 것으로 없어지지 않는다. 학교가 생기고, 일자리가 생기는 사회적 인프라의 변화가 있어야 가능하다. 1:1 결연으로 공부를 한 아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일자리가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국제사회에서는 이제 ‘원조’라는 말을 쓰지 않고, ‘개발’이라고 쓴다. 나의 기부가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진정으로 그 지역의 빈곤을 구조적으로 없애는 데에 기여하고 있는지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좋겠다. 선한 의도로 선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 선행을 하는 사람의 태도도 중요하겠다. 가톨릭 신자들이 해외 원조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해외원조주일이 2차 헌금으로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생일날만 밥을 주는 게 아니지 않나. 생일엔 좀 더 맛있는 음식을 주고, 평소에도 매일 밥을 주어야 아이가 살 수 있다. 해외원조주일 하루에 나의 모든 의무를 다 하는 것이 아니다. 이날 하루가 지속적인 실천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 해외원조주일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역대 교황님들이 계속 말씀하셨고, 특히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더 적극적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그저 ‘교황님 멋있다, 글 잘 쓰신다’에 그치지 말고, 그분의 말씀이 바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나눔은 좋은 일일뿐만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스도교적 사랑을 실천하는 데에는 어떤 정치적 색깔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행위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 하느님 사랑 편이다. 가난한 이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끌어주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