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제가 지난 주에 이곳 볼리비아 본당에서 한 강론을 한국에서 똑같이 했더라면 많은 분들이 씩씩거리며 따지고 들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저마다 자신이 집중하는 부분이 있어서, ‘이 사과는 달고 맛있어서 참으로 먹기 좋다. 하지만 꼭지 근처에 조금 파란 부분이 있다.’라는 말을 듣고서 ‘파란 사과는 절대 먹으면 안된다!’고 우겨대는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규정’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고 유교식 사고 안에서 절도와 예의범절 같은 것을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입니다. 아무리 못배운 아이라도 ‘존대말’에 대한 기본 개념이 없는 사람은 없을 정도이지요.
그래서 가톨릭 교회도 우리 한국 교회에 들어와서는 이미 지니고 있던 규율과 규범에 대한 문화적 격차가 거의 없다시피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아니, 도리어 그 반대로 더욱 격식을 갖추게 되었지요.
신부님과는 겸상하지 않고, 행여 장난으로라도 신부님의 팔을 툭 건드리면 ‘독성죄’에 해당하는 줄 알고 혼자서 고민을 하는 정도이니 알 만 합니다. 그런 이들이 여기에 와서 신부가 주교님, 아니 추기경님이랑 어깨를 두드리면서 인사를 나누는 걸 보고, 또 아주 쪼끄만 복사단 애가 신부님에게 와서 머리 깎았느냐면서 머리를 슬슬 만지는 걸 보면 아주 기절초풍을 할 일이지요.
주일 미사 지켜야 하는 것 맞습니다. 그보다 더 주일을 거룩하게 지낼 방법이 특별히 없는 이상 말이지요. 하지만 주일미사만 지켜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는 ‘주일을 거룩히 보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규정을 준수한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거룩한 분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가까이 머물 때에 거룩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미사’에 대한 의무규정이 생겨난 셈이지요. 왜냐하면 주일에 미사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거룩한 몸을 직접 받아모시는 것보다 더 하느님 가까이에 머무를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들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어느 극빈 노동자가 이틀을 연달아 강도높은 육체 노동을 하고 주일에 집에 들어와서 거의 반 죽은 듯이 잠을 자면서 휴식을 취하는데 그 사람에게 주일 미사를 지키지 않는다고 빈정대는 이가 있다면 그 뇌를 조사해봐야 합니다. 아니군요, 그 마음을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노동자는 그 수면을 통해서 이미 주일을 거룩히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다시 힘을 얻어 월요일부터 다시 시작되는 육체노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어느 샵을 지닌 사람이 충분히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고 있으면서도 주일에 손님이 더 많이 온다는 이유로 주일 미사를 거부하고 샵을 운영한다면 그는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셈입니다. 물론 그 사람의 입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올 것입니다. ‘먹고 살라니 어쩔 수 없네요.’ 심지어는 스스로의 겸손함을 드러내는 척 하기도 하겠지요. ‘아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어떤 참된 의미의 겸손함도, 삶에 대한 절실함도 없습니다. 그는 탐욕스러운 사람이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규정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우리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옛 포도주와 옛 가죽부대에 집착해서 새 포도주를 받아들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새 포도주를 받아들이면서 새 부대를 준비하지 못해서 부대가 터져 버리고 마는 아주 볼썽사나운 모습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