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연중시기의 마지막 주일을 항상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교회의 달력으로는 이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이며, 다음 주일부터는 대림 제1주일로서 새해가 시작됩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지내는 의미는 우리의 마지막 날에, 그리고 이 세상 종말의 때에 구름을 타고 오실(묵시 1,7)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주인이자 왕으로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죽음 직전에 빌라도와의 대화 장면으로서, 여기서 예수님은 당신의 나라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

이 말씀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사실은 예수님이 그저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나라는 영원히 하느님께서 다스리실 나라인데, 빌라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죄목을 달아 십자가에 못 박게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린 줄 알았지만, 그분의 부활로 모든 것은 새로워졌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실 때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으면서,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이시며 영원한 다윗의 나라를 다스리실 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예수님을 주님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온 세상 곳곳에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제2독서의 요한 묵시록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묵시 1,8) 알파와 오메가는 그리스어 알파벳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입니다. 이 말씀은 곧 예수님께서 모든 것의 시작이요 마침이라는 뜻입니다. 요한 묵시록을 조금 더 읽어보면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나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있다.”(묵시 1,17-18) 이 말씀에 따라 우리는 예수님이야말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오실 심판자이시자 왕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달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지내며, 새로운 한 해의 시작도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로 지냅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지내며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는 오늘, 나는 지난 1년 동안 얼마나 예수님을 나의 왕이자 주인으로 섬기며 살아왔는지 돌아보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