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자기들 가운데 서 계신 분이 다시 살아나신 스승님이라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 기뻐합니다. 예수님이 붙잡히셨을 때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의 잘못을 묻지 않으시고 오히려 평화의 인사를 건네시면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제자들이 참으로 기뻤던 것은 그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배반의 잘못을 예수님께서 아무 말 없이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용서가 제자들을 진정 기쁘게 했고 죽어 있던 그들을 다시 살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용서가 결국 나도 살리고 너도 살리는 부활의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이 상봉한 이 자리에 토마스 혼자 없었습니다. 어디에 가 있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아무튼 이 중요한 순간에 토마스가 홀로 빠졌습니다. 그래서 토마스는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말을 믿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서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이 말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토마스는 그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홀로 없을 때 예수님이 나타나셨다는 것에 대한 섭섭함과 혼자 왕따가 된 그런 소외감으로 인해 토마스가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여드레 뒤에 또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제자들 가운데에 서서 평화의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이 자리에는 토마스도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에게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일주일 전에 토마스가 했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그대로 상응하는 말씀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토마스가 제자들에게 고집을 부리며 말했을 때 그 자리에 안 계셨지만 토마스가 했던 말을 모두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토마스도 바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라고 고백합니다. 사실 예수님의 이 두 번째 나타나심은 토마스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토마스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으니 그 소외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있었지만 토마스에게는 그런 기쁨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토마스를 위해서 일부러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부활신앙은 꼭 우리의 두 눈으로 보아야만 생기는 그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사건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초월해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살아 계시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들 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들을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들만을 믿으려 하고 붙잡으려 합니다. 그래서 철학관을 찾아가기도 하고 점을 보기도 하고 다른 어떤 책이나 사람에게 기대어서 눈에 보이는 어떤 해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결코 우리의 감각으로 확인된 것만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것들이 우리의 삶과 세상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나의 두 눈에 보여지고 확인된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아닙니다. 유한한 피조물의 한계를 초월해 계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고 그렇기에 우리는 신앙으로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