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의 체사리오 성인은 오늘 제1독서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습니다. “이사악은 살해당하지 않고 숫양이 도살되었습니다. 일이 그렇게 진행된 것은 이사악이 실재가 아니고 표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 이사악 안에서 묘사되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죽을 운명을 타고난 자기 아들을 하느님께 바쳤는데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하느님께서는 불사로 태어나신 당신의 아드님을 인류를 위하여 죽음에 내어주셨습니다. 복된 이사악과 그 숫양에 관해서는 이사악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내고 숫양은 그분의 인성을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설교집』 84,5)

체사리오 성인을 비롯한 많은 교부들은 이사악이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표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부들은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하나뿐인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친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제물로 내어주셨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제1독서에서 일어난 사건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해서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 것을 넘어서 하느님께서 나중에 아드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아드님이 겪게 되실 일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아브라함의 믿음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아브라함이 거부하거나 실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 누가 하느님께서 자기 자녀를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곧바로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이사악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냥 주신 아들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100살이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 약속하셨던 축복의 결실로 주신 아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에게 당신이 약속해서 주신 아들 이사악을 다시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일까요? 가톨릭교회교리서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최대한으로 정화하시고자 그에게 주시겠다고 약속까지 해 주신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신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약해지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을 손수 마련하시고 하느님께서 죽었던 사람들까지 살리실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리하여 믿는 이들의 아버지가 된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를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실 성부를 닮았다.”(2572항)

여기서 우리는 신앙에 ‘정화의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그저 미사에 열심히 나온다고 해서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어떤 시험이나 시련을 통하여 더욱 단련되고 정화되면서 깊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믿음의 깊이에 맞게 정화의 과정을 겪도록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참으로 깊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뿐인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는 엄청난 시험의 과정을 겪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단 한 마디 불평이나 원망이나 거부의 말없이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사악은 죽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이 장작을 쌓아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 아들 이사악을 묶고 칼을 손에 든 뒤 아들을 찌르려 했던 것 자체가 아브라함에게는 이미 이사악을 제물로 바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