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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을 보고 놀랄 때가 많다. 아이들은 어른이 못 보는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 그들의 맑은 영혼 때문이다. 아내가 영국에서 뮌헨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 떼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교민, 유학생, 한인성당의 교인들이었다. 아주머니 몇 분은 병실에 들어서며 “민주 엄마…”하고 울음을 터뜨렸고 몇 분은 말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병실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그 때 일곱 살 민주와 친구 난희가 소리쳤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엄마 다리는 곧 자라날 거예요.” “맞아요.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도마뱀도 꼬리가 잘리면 또 자라나잖아요.”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잊었다. 어른들은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아이들은 슬픔 속에서 희망을 보고 있었다. 현재 서강대에서 철학을 가르치시는 김 신부님께서 기도하자고 하셨다.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 당신께서는 우리의 사고와 상상을 뛰어넘는 분입니다. 아직 우리가 당신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울고 있지만, 어린이들이 슬픔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처럼 데레사의 다리가 빨리 자라날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 주소서!”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아내가 비록 다리를 잃었지만 수많은 다리로 재생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는 기적을 낳는다고 했던가! 아내는 사랑과 기도에 힘입어 웃음을 찾았다.
하지만 입맛이 문제였다. 한국 환자에게 독일병원 음식은 고통이었다. 교민들이 조금씩 김치를 가져다 주기 시작했는데, 아내에게 그 김치는 음식이 아니라 보약이었다. 독일 간호사가 “어디서 마늘(악마)의 냄새가 난다”고 난리쳤지만 우리는 눈을 질근 감았다. 하루는 뮌헨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던 부산가톨릭대 홍 신부님과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장재희 사범이 문병을 왔다. 들어설 때부터 눈을 꿈뻑꿈뻑하며 신호를 보냈다. ‘뭔가 간호사가 싫어할 것을 가지고 왔구나’ 생각했는데 작은 냄비를 내밀었다. 한국을 다녀오는 분에게 특별히 부탁한 ‘개고기’였다. 교통사고 환자에게 특효라며, 게슈타포도 무서워했다는 독일 세관의 눈을 피해 개고기를 공수한 것이다.
나와 아내는 정성에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그 날 밤 아내는 독일 한복판에서, 그것도 병원에서 버젓이 개고기를 뜯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간호사가 한밤중 무언가를 먹고 있는 아내를 발견하고 물었다. 아내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맛있는 스프인데 맛보시겠어요?” 평소 개고기를 먹지 않던 아내는 이 날 밤 고국 개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정성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졌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 우리 가족과 개고기는 연일 독일 언론의 톱뉴스를 장식했을 것이다. 독일 세관과 병원 관계자는 곤욕을 치렀을 것이고 동물 보호로 유명한 프랑스 여배우가 달려와 천막농성이라도 벌이지 않았을까? 아무튼 아내는 그 날 일을 가끔 얘기한다. 사랑이 담긴 개고기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몸을 회복하는데 좋은 음식이라고 말이다.
백경학 미카엘·푸르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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