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천사들은 소돔으로 가는 길에 아브라함에 들러 식사대접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천사들을 배웅하러 나왔다가 주님으로부터 소돔과 고모라를 없애 버리겠다는 계획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 도시들을 위해 간청을 합니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안에 있는 의인 쉰 명 때문에라도 그곳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창세 18,23). 

주님께서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아브라함은 혹시나 그 숫자가 안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 사십 오명만 되어도 멸하지 않겠느냐고 다시 묻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그렇게 하겠다고 응답합니다. 이렇게 묻고 대답하기를 거듭해서 멸망을 막기 위한 의인의 수는 열 명까지 내려갑니다. 아브라함은 매 번 주님께 여쭐 때마다 “주님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고 자신을 낮춰가면서 어떻게든 죄인들의 멸망을 막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님도 죄인들을 위해 성부께 기도하고 간청하셨습니다. 당신의 수제자 베드로가 스승의 십자가 길을 거부하였을 때 호되게 야단을 치셨지만(마태 16,23), 또한 그가 궁지에 몰려 당신을 배반할 것을 잘 아셨지만, 그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루카 22,32). 심지어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도 하느님께 당신을 죽이는 자들에게 저주가 아니라 용서를 청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예수님은 죄악을 질타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분이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죄인이 회개하여 파국과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애를 쓰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닮고자 한다면 자기 스스로는 죄를 피하면서 죄인에 대해서는 가능한 관대한 사람, 어떻게든 그들을 살리려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농사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겨울의 추위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땅 속에 있는 병균이나 벌레가 다 죽어서 다음해 농사에 방해가 되지 않아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씨앗을 싹트고 자라게 하는 것은 부드럽고 따뜻한 봄바람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에게는 죄를 피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단호함이 없어서는 안 되겠지만, 사람을 살리려는 자비로움이 더 많아야 할 것입니다. 

남의 작은 허물에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면서 단죄를 하고 험한 소리를 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과연 이들에게는 허물이 없을까요? 하느님 앞에서는 누구나가 다 죄인입니다. 세상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고서 판단하고 단죄하지만,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낱낱이 다 들여다보십니다. 하루 종일 우리 마음속에 오가는 생각들을 살펴보면 나쁘고 악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그것이 나쁘고 악한 말이 되고 행동이 됩니다. 자신의 허물을 알면 먼저 하느님께 자비를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의 배반을 아시면서도 그를 위해 기도해주셨던 예수님은 오늘날도 죄인인 우리를 위해 성부께 간구해주십니다. 그분은 이미 최후만찬 때에 그런 기도를 하셨지요. “저는 이들(제자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요한 17,20). 교회를 통해 전해진 제자들의 말을 믿고 예수님을 믿은 이들이 바로 우리들이고, 예수님은 우리들을 위해 지금도 성부께 기도하고 계십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흠과 티가 많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면, 우리 역시 흠과 티가 많은 내 형제들을 위해 단죄가 아니라 기도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소돔의 멸망을 막기 위해 필요했던 의인 열 명이 오늘날에도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죄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면서 살되, 죄인들을 단죄하기 보다는 그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기도한다면, 의인 열 명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