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우리는 오늘 우리나라의 모든 순교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을 기억하며 정성껏 미사를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라는 이 말씀이 순교의 열쇠이며 대답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을 때 비록 세상에서는 더 이상 살지 못할지라도 하늘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을 우리 순교 선조들은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믿음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을 끝까지 믿으며, 예수님께서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영원히 살게 해주실 것이라고 믿기에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박해 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도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해서 총칼을 들이대거나 고문을 하거나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은 신앙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예전에는 목숨까지 바쳐가며 지켰던 신앙을 오늘날 신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내팽개쳐 버리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겉으로 보기엔 신앙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박해 시대보다 더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위험하다는 말의 의미는 신앙을 지켜내기가 더 어렵고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처럼 기술과 과학이 발달한 적은 없었습니다. 기술 과학 문명의 발달은 온 세계를, 인간의 삶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변화에는 분명 편리하고 좋은 점들도 너무나 많지만,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좋지 않은 점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 과학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신앙과 윤리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들은 너무나도 끔찍한 현실을 우리에게 날마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순교의 삶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간다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 때, 신앙인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분명 힘겨움을 겪게 됩니다. 세상의 논리와 세상이 추구하는 것들은 언제나 예수님과는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순교는 세상의 가치를 따라가지 않고, 그래도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단 한 번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평생 동안 지속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