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특이한 행동을 하셨습니다. 병자에게 손을 얹는 대신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마르 7,34)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신 그 사람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티로와 시돈 그리고 데카폴리스 지역은 모두 이방인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 지역에도 두루 다니시면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시면서 그들에게도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그들만 구원을 받고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하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오늘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놀라워하며 이렇게 칭송합니다. “저 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마르 7,37)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십니다. 왜 말하지 못하게 하실까요? 이 놀라운 기적들이 널리 퍼지면 퍼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를 텐데 왜 예수님은 침묵을 명령하실까요?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이 진정 어떤 분이신지를 잘 몰랐습니다. 그저 훌륭한 예언자 가운데 한 분 정도이거나 떠돌이 랍비 중에서 조금 뛰어난 랍비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이 사람들에게 전해질 경우 사람들은 더욱더 예수님의 정체보다는 일어난 기적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이라고 하면 곧바로 기적을 일으키는 놀라운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현대인들이 어느 점집이나 철학관이 신통하더라는 소문을 듣고 그 집을 찾아가는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늘과 같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이유는 구약에 예언된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나라가 이제 당신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의 병이 낫게 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는 하느님의 나라는 보지 못하고 놀라운 기적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놀라운 기적만 일어나는 그런 곳이 결코 아닌데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는 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지금 우리들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도 사실 하느님의 나라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고 내 귀에 들리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이, 내 귀에 들리는 것만이 진리이고 모든 것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내가 볼 때 아니면 아닌 것이고 내가 들을 때 아니면 아닌 것이 되어 버립니다.

성경에서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리고 눈이 열리는 것은 비단 육체적으로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서 회복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외치신 말씀은 지금 우리들 안에도 열려야 할 것들이 분명 있음을 말해 줍니다. 누군가에게 닫혀 있는 내 마음과 볼 줄 모르는 나의 눈과 들을 줄 모르는 나의 귀와 말할 줄 모르는 나의 입이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열리게 된다면 나의 존재와 삶은 완전히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